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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08. 2023

약속은 예언

0361

예언이 약속은 아니지만 약속은 예언이다.

미래의 어느 시간에 어느 장소에 내가 있겠다는 것은 예언이다.

오지도 않은 시간에 어떤 행위를 내가 하겠다는 것은 예언이다.

만남이라는 약속에 한정해 생각해 보자.

약속이 이행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약속에는 두 사람 이상의 체결자가 있는데, 약속일까지 당사자들이 생존해야 한다.

놀랍게도 약속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살아 있기에 여전히 살아있으리라는 것은 얼마나 교만한 생각인가.

그러나 이를 당연하다 전제하고 약속을 한다.

모두가 약속일까지 조신하게 집 안에 있다가 약속날에 안전하게 약속장소에 당도하는 방식이 가장 약속이 이뤄질 높은 확률을 가지겠지만 모두들 극도로 바쁘게 살아간다.

그 와중에 약속일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자가 약속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여태껏 약속이 아무 일 없이 성사되었다면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분명 우리 사이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으로는 약속한 이 중에 한쪽이라도 약속한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약속은 기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약속은 장소에서 이뤄지지만 시간이 전부이다.

약속 장소로 싸우지는 않아도 약속 시간은 누구나가 예민하다.

한쪽은 분명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더 많이 그리워하는 자가 약속시간을 앞당겨 장소에 도착한다.

그리워하는 자는 기다리는 것이 두렵지 않다.

늦게 도착하는 자는 기다리는 수고는 없지만 그리움의 참맛을 놓치게 된다.

양쪽이 기억을 약속시간까지 견고하게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리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운 얼굴을 그리다가 지우다가를 영원히 반복한다.

그리움의 힘은 가히 놀랍도록 강력하다.

사람은 그리운 대로 그리워하는 대로 살아간다.

허황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리움은 마음에다 어떤 틀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은 실제보다 견고하다.

꿈을 이룬다거나 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그리움의 반복학습으로 가능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내 주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내가 그리워하지 않았던 것이 있는가를!

그리워하는 것을 게을리하면 삶에서 다양한 오류가 발생하는데 그중 하나가 원치 않은 것들이 나의 풍경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약속 중에 글을 쓰고 있다.

다음 약속의 성사를 위해 또 다른 약속을 잡고 있다.

약속은 약속끼리 사슬처럼 연대를 하는데 하나가 어긋나면 줄줄이 무너진다.

약속을 함부로 하는 것은 예언을 남발하는 것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낭비하다 보면 머지않아 원치 않은 약속들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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