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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15. 2023

감성은 공감

0368

며칠째 속이 불편해 한의원에 와서 침을 맞으며 글을 쓴다. 이 글에는 한방의 기운이 흐르니 액정을 아픈 부위에 대면서 읽으면 효력이 있다고 우기지는 않겠다. 누워서 쓰니 팔이 저리다.


감성은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을 하느냐 공감을 끌어내느냐가 감성의 역할.

감정은 기분이고

감성은 능력이다.

감정은 선천적이나

감성은 후천적이다.

그러기에 감정은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감성은 훈련을 통해 익혀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면 詩가 읽히지 않으며 소설이 지루해지고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게 되고 타인과 동문서답을 하고 길을 잃어버린다.


감성은 유연함이다.

굳은 상태와 무른 상태의 정도를 모두 아우른다.

감성은 하나의 현상을 소설처럼 광활한 상상력으로 무수한 비유와 은유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시처럼 한 줄의 문장으로 함축해서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감성을 해서는 아전인수의 진부함이 아닌 역지사지의 창의가 필요하다.


시공간에 따라 감성은 변화하고 진화한다.

여전히 소월의 시에만 마음이 살랑거리고 애창곡 한 곡에만 어깨가 들썩인다면 감성의 생장점을 닫은 것이다.

공감의 폭을 넓히는 것 또한 수고로움과 애씀이 요구된다.

감성이 올드하다고 비난받거나 일상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비공감의 불이익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공감하지 않아 얻는 불이익은 무엇일까.

감성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뼈저린 건 없으나

글쓰기에서는 다소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감성의 글쓰기는 오로지 자기로부터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표현도 남의 것을 빌어 쓰기 싫어한다.

내 감성에 딱 맞는 문장은 내가 지금 새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타인의 그럴싸한 문장을 인용할 때마다 받은 선물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찝찝함이 들러붙기 때문이다.

모든 문장이 새로워야 하는 건 아니나 새로 마련한 문장의 팔딱거림은 그 손맛 때문에 어물전 생선들이 시시해져 손이 가지 않는다.

감성은 현재성이어서 '지금'에 집중하는 경우에 유효하다.

감성은 우연성을 먹고 자라고 과거로 넘어가려는 순간 곧장 폐기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모든 반복의 행위들이 유의미해지기 위해 감성과 악착같이 손을 잡는 것이다.

좋은 감성은 강력한 공감을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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