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숲오 eSOOPo
Jul 01. 2023
맑은 다짐만이 유효하다.
이타적인 각오만이 버텨내고 끝내 살아남는다.
하나의 영혼을 용서하고 평온으로 마음을 다스리기까지는 나를 거듭 죽이는 용기가 거듭 요구된다.
용서는 용기를 가지겠느냐의 다른 표현이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쌓으면서 지우는 서로 상반되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로 향하는 분노와 증오는 지워가며 내면을 정화시키는 작업이 원활하게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순탄치 않다.
부정적인 기운이 압도적이면 자정능력이 미치지 못해 마음의 병이 생기거나 큰 생채기를 남긴다.
증오는 그 자체가 나쁘다기보단 증오의 성질이 고약하다.
안 좋은 기억을 반복재생하는 부작용이 있어서다.
저만치 밀쳐두면 어느새 내게 밀착해서 괴롭힌다.
더 떠올리라고 부추긴다.
그때마다 기억 속의 나는 억울하고 딱하기만 한 주인공이 되어 나타나 새롭게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고통의 맛이 다채롭고 점차 강렬해진다.
삶의 미각이 둔감해지는 건 고통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맛본 후다.
벗어나야 한다.
나를 구해야 한다.
용서는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조금 비켜서 보면 용서도 이기적인 행위에 속한다.
용서라고 해서 어색해진 상대를 불러다 앞에 앉히고 두 손 꼭 잡고 벅찬 속내를 보따리 풀듯 늘어놓고 허심탄회하게 간쓸개 내어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상대에게로 향해 뽑아 든 분노와 증오의 칼을 무도 호박도 자르지 않고 얌전히 칼집으로 다시 넣기만 해도 용서일 게다.
나 스스로 충격에 소스라쳐 무관한 타자에 대한 문을 모두 걸어 잠그지 않는 것도 광의의 차원에서 용서에 속한다.
이것이 결코 나약하게 승복한 건 아니다.
진정 패배라면 상대가 통쾌한 승리감을 맛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에게 용서받은 일들이 있을게다.
그렇다면 지금의 용서는 내가 빚은 과거의 빚들을 다르게 갚아나가는 것이 된다.
오늘을 새롭게 하는 건 떠오르는 태양도 아니고 새로 넘긴 빳빳한 달력도 아니다.
내가 다시 장만한 마음만이 현재를 신선하게 한다.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거친 감정과 나쁜 기억을 폐기하기에 좋은 아침이다.
글쓰기가 이럴 경우에는 수다보다 뒤끝이 깔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