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3
(이 글은 영화관람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의 글도 아니고 영화관람료 인상에 대한 비판의 글도 아니다.)
영화관의 객석이 텅텅 비었는데도 불구하고 세 차례 인상한 관람료를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시쳇말로 극장의 '믿는 구석'이 무엇일까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원자재나 원재료가격과 무관한 직종일수록 손님이 줄어들면 가격을 내리던가 덤으로 무언가를 끼어주던가 하는 것이 장사꾼의 전략적 태도변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가격마케팅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불황기에 가격을 되레 올리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관의 인상된 관람료 유지에 대해 다루는 기사들은 대부분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를 펼친다.
팬데믹보다 관람객 수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올해 1월 기준 2019년 비슷한 시기와 비교해 관람객은 62%선이고 매출액은 82% 수준*) 회복세로 보이니 이는 인상이 관람객의 영화관 방문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영화관은 극장이 가진 특수한 환경적 매력이 있어 고객들이 지불하는 금액을 저항감없이 수용하고 있다고 기사들은 결론 내리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건 겉으로 파악한 분위기이고 실제로 내부적으로는 관객들의 불만이 큰 것을 의식하고 있다.
한국영화관산업협회장의 입장이 지난 3월에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바 있다.
"투자배급사, 제작사도 요금 인상에 합의했다. 정당한 관람료라고 판단했으며 문화상품을 박리다매하고 싶지는 않다. 극장들이 특별관에 수십억씩 투자하며 관객이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고민하고 있다."
팬데믹 도중에 은근슬쩍 무려 세 번이나 가격인상한 것이 괘씸하다는 여론에 대해서도 입장을 드러냈다.
"갑작스럽다는 의견은 이해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비용과 콘텐츠를 선보이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비용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연간 관객 수가 1억 5000만 명이 되지 않으면 운영을 하는 데 손해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가상승과 영화상영과 연관된 부수적 부대비용으로 인상은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논리다.
극장은 '믿는 구석'은 다른 곳에 있는듯하다.
극장이 인하를 단행하지 않지만 그들도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관객이 외면하는데 시장에서 고집스레 살아남을 수 있는 통뼈업종은 드물다.
아무래도 한 번 올린 금액을 내리는 것은 모양도 빠지고 다시 올리려면 더 강력한 명분을 제시해야 하기에 겉으로는 유지하되 관객이 인하를 체감하도록 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비근한 예로, 두 개의 형태가 눈에 띄는데
하나는 영화 아닌 것을 선보이는 것이고
하나는 Oldies but Goodies(옛날 영화 볼래 전략)와 '득템력' 마케팅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만 본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 먹힌 듯하다.
우리나라는 케이컬처를 앞세운 문화선진국이면서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외곽에 있는 이상한 나라다.
극장이 오히려 접근성이 용이한 곳에 위치해 있으니 음악과 미술, 전시, 강연, 콘서트를 극장에서 향유하도록 한다면 효과적일 거라는 전략이 맞아떨어져 점차 공연과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미술전시의 경우 직접 작품을 찾아 긴 동선을 힘들게 걷지 않아도 전문 도슨트와 함께 고화질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를 보면서 감상할 수 있다.
메가박스는 <내 생애 첫 미술관><메타그라운드 성수><로열발레-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CGV는 <푸치니 오페라: 세 여인의 변신><10cm 콘서트><영탁 콘서트:탁 쇼>등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으로 재개봉작 상영으로 관객몰이중이다.
옛날 영화나 숨은 작품들을 선정해 현재의 관람료와 차별해 책정하고 있다.
메가박스에서의 '시네마캐슬' 작품들은 스즈메 인기에 힘입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들로 라인업을 짜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다.
CGV에서는 스타를 지정해 회고전 비스무리하게 작은 영화제분위기를 낸다.
이번에는 톰 크루즈 특별전을 상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굿즈로 우수회원의 마음을 끌고 있다.
극장에 사람이 없다지만 사실 아트하우스관에서 개봉하는 첫날 한정판 굿즈를 주는 영화 예매는 쉽지 않다. 금세 매진사례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진풍경이 펼쳐지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분증과 영화티켓을 들고 길게 선 줄은 이런데도 무슨 영화 불황기냐고 반문할 정도다.
이때 나눠주는 배지는 아트하우스 클럽 회원에게만 주는 한정판이라 영화는 놓쳐도 굿즈는 꼭 득템하겠다는 뜨거운 열의를 느끼게 한다.
더 다양하게 오리지널 포스터라든가 엽서나 오리지널 티켓은 디자인도 뛰어나 영화 보는 재미보다 더 큰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이들만 붙잡고 갈 수는 없는 게 극장의 처지겠지만 이들의 '작은 열기'에 힘입어 굿즈로 인상된 간극의 허한 관객의 기분을 채워주는 것도 꾸준히 하는 실정이다.
영화관들이 '믿는 구석'만으로 수익의 틈을 모두 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충성고객을 위한 서비스에 대한 고민은 더 진화할 것이다.
결국 극장으로 올 사람은 비바람이 불어도, 2만 원으로 올려도 올 것이 때문이다.
그건 넉넉한 주머니사정이라서라기보다는 시스템이 그들을 구조적으로 세이브해주기 때문이다.
CGV도 많이 볼수록 공짜표와 할인쿠폰이 쏟아지고 (CGV최고등급 SVIP인 내 쿠폰함에는 CGV VIP쿠폰 68매 할인쿠폰 27매가 있다. 언제 다 쓰나 싶다.)
메가박스도 매달 5편을 보면 다음 달에 무료티켓이 날아온다. (메가박스 최고등급 MVIP인 내 쿠폰함에는 35장이나 고이 들어앉아 있다. 이건 또 언제 다 쓰나.)
영화관람료의 인상 인하문제는 생각보다 엉뚱한 부분에서(부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논의되고 있으며 재화보다는 다른 쪽으로 그들의 이익을 관객에게 돌려줄 것이 유력해 보인다.
*영진위 2023년 1월 결산 자료 참고
**아시아경제와 한국영화관산업협회 김진선 협회장과의 인터뷰 중에서 부분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