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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01. 2023

담벼락 충고

0415

글쓰기가 막막한 것은 글을 쓰려는 순간 길인 줄 알았던 생각들이 담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벽이었다면 글 너머의 세계를 감히 넘보지 않고 포기라도 할 텐데 담은 그러지도 못한다.

어찌하면 단숨에 넘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준다.

담 너머에서 소리가 고스란히 이쪽으로 넘어오고 담쟁이도 식물인 주제에 스스로 넘어가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오기를 부추긴다.

어서 내 막막했던 마음을 담담하게 돌려놓는 일만 남았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좋은 펜을 고르는 것보다
알맞은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담 앞에 서있는 마음은 어릴 적부터 예사롭지 않다.

세상의 모든 담들은 도화지이고 화선지다.

담이 서 있는 것은 글쓰기에 좋은 자세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니 담은 우리를 가로막으려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서라는 신호이다.

마치 거대한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담을 잘 구슬리면 문으로 안내해 주거나 담 어딘가에 숨겨둔 창으로 안내할 것이다.

담이 비로소 글쓰기에 있어서 덤이 되는 순간이다.


담벼락은 담벽일까 담벼랑일까.

담은 이토록 하늘로 치솟는가 땅으로 깊이 추락하는가의 양면성을 가진다.

글쓰기에 있어서 담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굴절의 기회, 변곡의 명분을 담으로부터 얻는다.

담이 없이 매끄럽다면 글쓰기가 이처럼 귀하고 숭고할 수 있었을까.

이 견고하고 신중한 장애물이여!

네가 묵묵히 침묵하는 동안 수많은 갈래길을 헤맬 수 있었구나.

그것을 글쓰기의 물꼬를 틔어주었고 하나의 고개를 넘도록 등을 떠밀어 주었다.

담은 더 이상 부정성의 선봉대가 아니다.

괜찮은 역경극복의 신호탄이다.

글쓰기가 막힐 때에는 담벼락을 곁에 두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자.

담이 답을 들려줄지도 모른다.

담이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은 가장 어려운 삶의 답안지를 과묵한 사물들에게 맡겨두었다.

입을 가진 인간은 유사 답안지만 가질 수 있다.

글 쓸 때마다 담이 가로막는다면 담이 그대에게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을 테니 펜을 내려놓고 담에 가만히 귀를 대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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