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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2. 2023

지하철 퇴근

0436

모처럼 지하철 퇴근길이다.

지난 버스요금 인상 후 대중교통 이용 시 동선을 지하철로 옮겨 이동한다.

원래 사무실과 집 사이의 오가는 방법은 28가지나 된다.

그 구간 최단거리는 지하철이지만 버스이동을 선호했다.

풍경이 없는 이동이 마뜩지 않았고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 내키지 않았다.

나의 출퇴근은 러시아워를 피하는데 오늘은 컨디션  난조로 이른 퇴근이 지하철 혼잡과 겹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근무시간이 비슷한 게 신기하다.

당연한 일도 때로는 당연한 범주 밖에서 바라보면 결코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낯선 이와 초근접 거리에서 마주 보거나 어깨 부딪히며 좁은 공간에서 있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왕 이렇게 된 상황이니 말을 건넬 만도 한데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고정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손잡이는 저 멀리 있다.

순간 급정거라도 한다면 마주한 땀범벅된 와이셔츠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

아까 스텝을 옮기다 착지에 실패해 한 발이 허공에 있다.

인간의 다리가 두 개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역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같다.

문이 닫히기 전에 나만의 편안한 동작을 서둘러 결정해야 한다.

자칫 누군가의 발등을 밟기라도 하면 연신 사과의 고개를 숙이다 주변의 머리통이 도미노처럼 쓰러질 것이다.

역마다 낯선 이와의 이별이 반가운 특별한 감정이 인다.

도시인은 함부로 외롭지도 못한다.

그토록 외로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혼자이고 싶다고 속으로 외친다.

사실 붐비지만 조용하다.

말소리가 없는 것이 고독일까

사람이 없는 것이 외로움일까.

사람이 그리워 떠나지 못하기도 하고
사랑이 그리워 떠나기도 한다


일할 때만큼이나 출퇴근 노동도 만만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도 노동행위로 간주해줘야하지 않을까 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일부터는 자발적 야근을 하는 게 좋겠다.

내 몸 하나라도 줄여주는 것이 러시아워에 기여하는 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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