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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ug 21. 2023

줌에서 만나

0435

글 쓰는 동지들끼리의 화상 만남이 있었다.

화상으로 만나는 것은 늘 어색하고 낯설다.

오히려 직접 보는 것보다 편하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반대다.

먼저 평면의 화면이 입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 화면은 인원수만큼 분할되고 참여자수가 많아질수록 네모가 작아진다.

각자 네모난 상자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목소리가 들리고 얼굴이 보이지만 사이버스페이스다.

20명이 있다면 38개의 눈동자를 감당해야 한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직은 서툴다.

시선의 포커스가 희미해지니 대상의 존재감이 희박해진다.

목소리는 괜히 커지고 눈동자도 평상시보다 놀란 토끼의 그것에 가깝다.

마이크가 노트북에 숨겨져 있으니 손의 놀림도 어색하다.

카메라가 너무 작고 정교하니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다.

그런 불편을 덜고자 화면 끄기와 소리 끄기가 있는데 그것이 상황을 더 각박하게 한다.

리얼스페이스라면 불가능한 벙어리 되기와 사라지기는 너무 쉬워서 난감하다.

줌 화상회의 프로그램에는 줌 렌즈가 없다.

zoom in과 zoom out을 하려면 렌즈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기왕에 제목과 기능이 일치하지 않으니 '줌'을 '주다'의 명사형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줌을 통해 정보를 주기도 하고 정을 주기도 하고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zoom에는 줌 렌즈로 화상을 확대/축소하는 의미도 있지만-

'갑자기 질주하다'
'급상승시키다'
'감격시키다'

조금 더 단어의 의미를 헤집고 들어가면 '(타인을) 감격시키다'라는 뜻도 있다.

지난 팬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모임을 줌으로 한 경우가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참석자들을 하나같이 고양시키는 것은 매양 유사했다.


이제는 싫으나 좋으나 줌과 같은 형태의 비대면 방식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공간이동의 불편함을 줄이는 것도 있지만 이런 방식의 만남이 주는 특징도 무시할 수 없다.

행사를 기록하고 공유하기에도 용이하다.

기 백 명씩 모이는 것도 가능하다.

말하는 이에게 집중하기 좋다. 

참고영상이나 자료 제시가 편리하다.

가장 좋은 건 헤어질 때 구질구질하지(?) 않아서 좋다.


아무튼 줌에서 만나서 줌에서 헤어졌다.

가벼움은 깃털 같으나 

정겨움은 무쇠 같았다.

조금씩 줌에서의 만남에 익숙해지고 있다.

다음에 줌에서 만날 때에는 아이컨택트에 도전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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