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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1.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6회

제게 어울리는 시를 골라 주세요

46






요즘 들어 SNS 메신저나 메일함을 열어보는 것이 꺼려진다. 부쩍 늘어난 외부행사에서 노인의 강연을 접한 이들의 한결같은 문의 때문이다. 태도에서 정중함과 무례함의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8할이 자신에게 시를 추천해달라는 요구다. 시낭송가 인증서를 보유한 이는 그 나름대로, 시낭송가를 도전하는 이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시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사연들을 늘어놓는다. 한두 번은 추천해주기도 했지만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그들끼리의 소문이 돌았는지 너도 나도 하면서 몰려드는 요구가 이제는 노인도 감당하기 벅찬 수준까지 온 것이다. 노인이 시낭송가의 시 선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 주제로 강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할 말이 많기도 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매칭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이유에서다. 언젠가 소년과 만난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를 뒷받침한다.


-선생님은 어떤 시가 낭송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옷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매번 그 고민에 빠져 있다면 자네는 옷을 제대로 골라본 적이 없는 것과 진배없다고 보네. 누군가 입은 옷을 흉내 내어 입는다던가 아무 옷이나 급히 입었던게지. 의복이 어떤 장소와 목적에 영향을 받듯이 내가 선택할 시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네. 대회에서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줄 것인지 공연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달할 것인지를 말일세. 무엇이 옳은지 모를 때에는 옳지 않은 항목부터 지워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것만 고민해도 선택해서는 안될 시들은 우선 걸러지지.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시들을 선택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남들이 입은 옷이 좋아 보여서 그 옷을 똑같이 입는 것과 같아. 내 체형과 취향이 전혀 반영이 안 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데 어찌 이전의 낭송자보다 매력이 있을 수가 있겠나. 평소에 시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시도 알 수 없지만 내가 낭송하고 싶은 시도 모를 수밖에 없네.

-그래도 누군가가 대신 골라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낭송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무척 게으르고 무책임한 생각이 아닐 수 없군. 선택 또한 감성의 영역 안에 있다네. 자네가 평소에 서점에 가서 책을 접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마음이 동해 책을 사려 서점에 갔을 때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몰라 엉뚱한 책을 집어 들고 집에 돌아올지도 모르지. 자주 대상을 마주 한다는 것은 그것을 내 방식대로 알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상과 나와의 연결점을 형성하거나 서로의 접점을 발견해 가는 일이기도 하다네. 그 과정을 생략하고 대상을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면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지. 자네는 시를 선택한다고 생각하나? 어느 날 시가 자네에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그때에 자네는 시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아 주면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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