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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0.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5회

아름다운 감성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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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감성노동자다.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훅실드가 그의 저서 <감정노동>에서 처음 언급했다.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업무상 정해진 감정표현을 연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감정노동자라고. 소년은 감정노동자는 아니다. 뉘앙스만 비슷하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세상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완전히 다른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사하게 말하지만 천지의 간격을 보이는 문장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위'와 '권위적'이 그렇고 '인간이 어떻게?'와 '사람이 어떻게?'가 그렇다. 감성과 감정은 때로는 비슷한 의미로 쓰이다가도 결정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길을 간다. 감정노동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나 번아웃 증후군으로 힘차게 달려가지만 감성노동은 오히려 그것들을 보듬어 상쇄시킨다. 그러니 억지로 웃음을 팔지 않아도 되고 우울증으로 확산되는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감정노동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만 감성노동은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도록 부추긴다. 감정노동은 정해진 감정표현을 연기하지만 감성노동은 정해지지 않은 감성을 드러내는데 인위적으로 스스로를 강제하지 않는다. 감정노동은 타자와의 불필요한 투쟁이지만 감성노동은 타자와의 유의미한 공존을 지향한다. 소년은 그래서 감성을 말랑말랑한 느낌이나 좋은 것을 보면 살랑거리는 마음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성을 개인적인 성향의 형태나 취향의 문제로 가두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감성은 커뮤니케이션이고 소통이라고 여긴다. 감성은 타인을 이해하는 이 크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스스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감성노동자라고 부르기를 기꺼워했다.



      

소년은 시낭송을 할 때마다 감정만 사용하는 것을 경계했다. 때로는 감정만으로 표현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여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원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대어 곱게 포장된 감정으로 낭송한다면 감정노동지들과 시낭송가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보았다. 감정은 과잉이 있지만 감성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과잉으로 넘어가는 순간 더 이상 감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성은 균형의 에너지를 가지고 작동한다. 감정은 절제의 방식으로 다루지만 감성은 드러냄의 방식으로 활용한다. 감정은 누구나 소유하고 있으나 감성은 늘 외부로부터 수혈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낭송의 탄력이 느슨해질 때마다 소년은 멈추고 감성을 살폈다. 감정은 대책 없이 자라는 잡초 같고 감성은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화초 같았다. 다시 채워진 감성은 시를 선택할 때 온전히 발휘되었다.

마치 재료를 동일한데 요리법을 더 말이 가지거나 요리 도구를 더 많이 구비하게 된  요리사가 된 처지 같았다. 소년은 만들 요리가 궁금해지고 만들면서 신이 났다. 그것의 차이는 관객이 단박에 알아보고 반응했다. 소년은 그때 깨달았다. 낭송으로 누군가의 가슴을 움직이려면 감정이 아닌 감성으로 열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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