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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18.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3회

불협화음도 필요해

43



-난 이 음악가 싫어.

아인슈페너를 입에 가져가며 소년은 삐죽거렸다. 잔을 내려놓자 입가에 하얀 크림 수염이 생겼다.

사실 소년은 젊은 시인들의 시를 낭송할 때에는 배경음악으로 사티의 음악을 즐겨 사용했다. 카페에는 사티의 짐노페디가 흐르고 있다. 느리게 느리게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은 몽환적이었다. 연주 악보에는 '비통하게' '슬프게' ' 장중하게'라고 연주 지시가 되어 있지만,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다. 독특한 편안함이 낭송과 어울렸다. 


-군생활 적응이 힘들다고 병을 만들어 의가사 제대하는 그였잖아.

몽마르트르에서 만난 낭만주의 시인 콩테미뉘의 시에 영향을 받았는지 혹은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 서로 주고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독특한 제목의 피아노곡은 중독성이 있었다. 소년은 그 비밀이 느림과 불협화음에 있다고 확신했다. 예측 가능한 음의 구성이 아니라 다소 불안감을 주는 것이 단조롭지만 지루하지 않게 했다. 이는 자유로운 형식과 내용의 젊은 시에 잘 어울렸다. 기대하는 대로 흐르지 않는 것은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낭송을 할 때에도 진부함으로 가지 않게 도와줬다.


-책임감 없는 사람 매력 없어.

다시 잔을 입에 대니 윗입술 아래로는 쫀쫀한 크림이, 아랫입술 위로는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뒤섞였다. 달콤함과 쓴 맛을 동시에 맛보면 그 중간의 규정할 수 없는 맛에 황홀했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극단의 낭송은 실패로 이어지기에 항상 경계했다. 

비스듬히 그림자를 자르고 명멸하는 회오리
밝게 빛나는 판석 위에 금빛으로 흘러넘치네
호박색 원자들이 서로를 불 속에 비추면서
짐노페디아와 사라방드를 뒤섞어 춤추네


잠깐의 황홀한 미감은 나체로 뒤엉켜 춤을 추며 의식을 치르는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소년은 순간 사티처럼 짐노페디스트가 된 듯했다. 소년은 느리다는 것의  미덕을 잘 알고 있다. 천천히 낭독하면서 관객과의 교감이 깊어진다는 것도 경험했다. 자동차로 도로를 달릴 때보다 자전거로 아니 걸어서 그 길을 지나칠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비스듬히 하늘거리는 꽃들도 숨은 이름을 간직한 풀들도 더 자세하게 보였다. 그것을 만질 수 있었고 맡을 수 있으니 세계는 이전보다 더 완벽해졌다. 그것이 시를 천천히 낭송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작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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