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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17.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2회

의도 너머의 무언가가

42



-시인의 마음이나 입장이 되어야 하나요?

-왜 그래야 하나?

-그러면 낭송을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네.

-그럼 시를 잘못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네가 말하는 잘 전달하는 낭송이란 게 뭔가?

-시인이 말하려는 의도를 잘 파악해서 알맞은 소리로 청자에게 듣기 좋게 전달하는 겁니다.

-과연 모든 시들이 의지를 품고 있을까. 어떤 마음의 풍경이거나 상태라면 어찌할 텐가. 게다가 듣기 좋게 전달한다는 것도 낭송이라는 단어가 주는 오해에서 기인한 것일 텐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네. 자네는 고급 요리를 앞에 두고 주방장의 의도를 고민하진 않지 않은가.

-목소리는 낭송에서 중요하지 않나요?

-왜 중요하지 않겠나. 허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순간 시는 저 멀리 물러나게 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명심하게. 목소리는 여행 장소로 데려다주는 수단인 자동차 같은 것이지. 여행의 추억을 떠올릴 때 교통수단은 너무 미비한 부분이 아니던가.

-선생님! 그럼 낭송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음... 너무 많은데...

-그렇게 까지나요?

-물론이지. 낭송을 수동적인 표현형태로 본다면 단순하게 하나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보다 능동적인 예술행위로 접근하면 무수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낼 수 있다네. 그걸 하나씩 짚어보자면...


찌르르르르 똑깍

찌르르르르 똑깍

알람 소리에 소년은 노인의 입과 얼굴을 놓쳤다. 마치 조상님이 나타나 행운의 숫자 6개 중 4개를 말하고 사라진 것처럼 허무한 마음이 들어 한참 그 뒷말을 유추하느라 복잡해지긴 했다. 당장이라도 노인에게 전화해서 따져 묻고 싶으나 그건 꿈나라 이야기일 뿐. 생각을 고쳐 오늘의 일정을 추스르는 데로 옮겨갔다. 겹치는 작은 개인 일정의 우선순위를 저울질하는 사이, 땅속에서 갓 올라온 매미소리가 이른 아침부터 절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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