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19. 2023

꿈 많이 꾼 잠

0464

숙면하지 못하고 자주 깼다.

밤 12시 새벽 2시 그리고 4시.

마치 군시절 불침번인 양 눈이 떠진다.

짧은 수면시간 동안 긴 꿈을 꾼다.

무슨 서사가 눈을 감을 때마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눈을 뜨면 그 즉시 기억은 놀란 토끼처럼 달아난다.

묶어두지 못하는 것은 저 대포의 포신 같은 굴뚝에서 기어 나와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만은 아니다.

날마다 꿈속에서 생산되는 이야기도 잡아두기 힘들다.

잊혀도 겪은 것이어서 세포는 기억한다.

경험되어도 몰랐던 기억들은 차곡차곡 무의식 창고에 두서없이 적재된다.

그래서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이다.

꾸는 것은 빌리는 것이다.

내가 꿈꿀 때 밖이 아닌 내 안의 무의식에서 무언가를 빌린다.

갚을 것을 약속하고 빌리는 돈인 양 꿈을 꾼다.

꾼 돈과 꾼 꿈은 비슷하다.

이자가 붙는다. 눈덩이처럼!

그렇기에 꿈은 처음 생각의 종자보다 결과의 열매가 비교불가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는 꿈 이룬 자들의 입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당연한 탄식이다.

꿈 많이 꾼 날에는 빚을 진 빚쟁이 심정을 갖는다.

밖의 꿈과 안의 꿈은 다르지만 구분 없이 다뤄진다.

수동적인 꿈과 적극적인 꿈으로 구분하려 한다.

깊이 꿈꾼 이들은 안다.

둘 다 눈을 감을 때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은 꿈을 대하는 태도가 시력에 있지 않음을 반증한다.

마음이 조망하고 마음이 관장한다.

마음이 단단하면 어설픈 꿈이란 없다.

시각화에 치중하지 않아도 꿈은 스스로 역동한다.

어차피 잠들었다면 꿈을 피하기 어렵다.

삶에 취해있다면 꿈을 외면하기 힘들다.

이루려고 꿈이 있지 않고 꾸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잘 꾸기만 해도 꿈은 이루어지는 쪽으로 제 몸을 튼다.

꿈의 어디에 집중하는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 날마다 우리는 눈을 붙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라는 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