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Sep 28. 2023

한가위 이브

0473

축제나 기념일의 전날 밤을 이브라고 하잖아요.

이브는 이브닝의 줄인 말이겠죠.

하지만 전날 전부를 통틀어 부르고 싶어요.

너무 짧은 것은 길게 늘여서 즐기는 것이 좋겠어요.

이브가 풍성해야 정작 한가위도 풍성해질 것 같으니까요.

전날을 이브라고 부르니 아담이 기웃거리네요.

자기도 끼워달라고 손짓을 해요.

하지만 아담한 하루는 별로라 뒷발로 차버렸답니다. 

뻥!

정작 축제의 당일보다 전날이 더 설레는 것은 이브라는 명칭 때문만은 아닐 테죠.

태풍도 오기 전의 고요가 평화롭죠.

막상 닥치면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소풍도

운동회도

잔칫날에도

소문난 만큼 먹을 것이 없었던 기억이 많네요.

명절은 소문으로 모인 것이 아니니 예외일 겁니다.

한가위는 길이 막혀야 제 맛이에요.

이브의 참맛은 쉽게 닿을 수 없음이 아닐까요.

아무리 교통수단이 좋아지고 길이 수없이 새로 뚫려도 고향으로 가는 길은 늘 막혀요.

그것은 이브를 위한 배려인 거죠.

어쩌면 도로에 쏟아져 나온 차들이 연대해 천천히 가자고 짠 건지도 몰라요.

맛난 건 아껴 먹듯이 그리운 곳에는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는 거예요.


무려 일주일에 육박하는 올해 연휴는 가을 바캉스 같아요.

고향을 다녀오고도 나흘이나 여유가 생기니 말이에요.

밀린 책을 읽어도 좋겠고 밀린 글을 쓰는 것도 좋겠고

소홀했던 우정을 챙기는 것도 소홀했던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지친 만큼 먼 거리를 떠나고
지친 만큼 제자리에 머물고

편안한 고독감을 느껴보는 것으로 선택했어요.

가장 순한 음식들을 먹으며 가장 느린 호흡을 하는 시간으로 준비했어요.

올해도 익숙해지기도 전에 벌써 백 일도 남지 않았네요.

연초에 자신에게 던진 슬로건을 다시 꺼내 봅니다.

Euthymia 에우티미아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한 인식이며 그 길에 끼어드는 모든 방해물들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거기에만 집중하는 상태를 다시 챙깁니다.

한동안 마음의 평정을 놓치고 살았네요.


이 글을 여기까지 따라와 읽어주신 분들에게 인사올립니다.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레아 세이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