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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27. 2023

한 줌의 영감

0502

한줄기의 햇살이 던져진다.

족하다.

한 줌의 영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만족한다.

한 떨기의 향기가 덮쳐온다.

무슨 꽃.이.었.더.라.

인공은 거추장스럽게 달라붙지만 자연은 휘발된다.

불쑥 솟아난 영감이 머물지 못하는 건 자연스럽다.

영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영감은 임자가 없다.

이른 가을 녘에 국도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처럼 대책 없고 함부로 흔들린다.

영감이 왔다고 믿는 건 착시에 가깝다.

마치 심심한 양치기의 거짓외침 같은 것이다.

영감이 나타났다
영감이 떠올랐다

양치기는 늑대를 경계하면서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다.

가장 두려운 것들을 애착한다.

가장 나를 상처 주는 것들을 욕망한다.

어찌 된 일인지 밤새 밀쳐낸 생각들이 영감이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내 앞에 나타나 손을 내민다.

태도만 달라져도 입장이 바뀐다.

내민 손을 뿌리치고 그만 거세게 포옹한다.

죽도록 미우면서 사랑스러운 것이 영감뿐이랴.

포옹한 팔을 푸는 즉시 내게서 사라질 운명이지만 품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영감은 늘 한 줌씩만 온다.

감질나서 한 번은 떠나가는 영감의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외친 적이 있다.


계륵 鷄肋
 같으니라고!


영감이 두려운 건 미리 약속할 수 없단 점이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생각 주위의 늑대이기 때문이다.

늑대는 내가 생각이라는 양을 품고 있을 때에만 나타난다.

늑대는 내가 아닌 양을 노린다.

영감도 내가 좋아 오는 게 아니라 생각을 노린다.


아침 햇살이 나를 감싸면 나는 오늘 한마리의 영감이 나를 할퀴고 가기를 기도한다.

날카로운 영감의 키스를 받는 날에는 저녁에 죽어도 좋을 기꺼운 마음이 된다.


그 마음을 환희라고 가만히 부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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