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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Oct 26. 2023

밤마실 가서

백 서른여섯 번째 글: 양심은 어디로?

한창 글을 쓰다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 쓴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뭐 쓸 만큼은 썼다고 판단이 되어 모처럼만에 밤마실을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작게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이렇게 도는 게 과연 운동이 되겠나 싶어 이번엔 좀 크게 돌자 싶어 제가 살던 동네 건너편으로 넘어갔습니다. 대로변을 벗어나 작은 소방도로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창 걷던 중이었습니다. 거창하게 힐링까지는 아니어도 쉬자고 나온 길이었는데, 아무래도 전 천상 글을 써야 할 팔자인 모양입니다. 어떤 한 곳을 지나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져 일단 사진에 담아 봤습니다.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나무 기둥 근처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쓰레기 더미가 놓여 있습니다. 평소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쓰레기를 유기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대구광역시 달서구청에서 안내판을 제작해서 가져다 놨는지, 아니면 주차장 주인(?)이 사비를 들여 제작하면서 그렇게 인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내판 안에 떡하니 이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빨갛게 동그라미 친 부분 안에 말입니다.


쓰레기 다시 가져가세요.


저렇게 표시되어 있다는 말은, 저곳은 쓰레기를 내다 놓는 곳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무단투기했으면 저런 안내판을 버젓이 설치해 놨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곳은 퇴근할 때도 간혹 한 번씩 지나치는 곳인데, 그때마다 늘 저렇게 쓰레기가 놓여 있는 곳을 보곤 합니다. 오늘 본 양은 그나마 심한 날에 비하면 반의 반도 안 되는 양입니다.

사람의 심리라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저렇게 놔두면 종이컵을 들고 가던 사람이나 캔이나 페트병에 든 음료를 마시던 사람, 혹은 각종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들고 가던 사람도 '여기 버리면 되나 보다'하며 마구 던져 놓고 가곤 합니다.


아마도, 그걸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하던가요? 여긴 뉴욕시(市)도 아니지만, 사람의 심보는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한 번 지저분해진 곳은 그 어느 누구라도 지나가며 훼손해도 양심의 가책을 덜 받는 모양입니다. 분명한 건 저 동네 사람이 한 소행일 겁니다. 예를 들어 저처럼 굳이 한 블록 너머에 사는 사람이 무겁게 저걸 들고 와서 버리고 갈 리는 없을 테니까요. 몹시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이기에 저런 몰상식한 짓을 하나 하고 말입니다.


버리는 놈(者)이 따로 있으면 치우는 분(人)도 따로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저곳은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가 봅니다. 저렇게 놔두면 저 자체만으로도 동네욕이 된다는 걸 모르는 건지, 단 한 번도 저기가 깨끗한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저곳은 늘 저러했습니다.

양심은 도대체 어디에 두었을까요? 이건 어쩌면 인간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도 있으나 바로 건너편엔 절이 하나 있고, 또 바로 위에 교회도 있는데, 왜 저곳은 늘 저런 모습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절에 있는 분이나 교회에 있는 분이 치워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동네를 저런 꼴로 놔두고 무슨 영혼을 구원하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하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저런 상태를 묵인하면서 살아가는 저 동네 사람들에게 교회와 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버려진 양심, 그 어느 누구도 치우지 않는 동네, 과연 저 동네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요?


사진 출처: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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