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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01. 2023

옛날 라디오

0507

가끔씩 옛날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잊히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디제이들의 목소리가 그리운 날이 있다.

온전하게 방송 전체를 들을 수는 없지만 10분 남짓의 유튜브 콘텐츠는 옛 정취를 맛보기에 아쉽지 않다.

순수하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다.

음악은 변함없는데 목소리는 시절을 말해준다.

별이 창가로 쏟아지던 어느 밤에 듣던 라디오는 친구보다 다정했다.

공부를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내 귀와 온 마음은 라디오에 가 있었다.

디제이의 말 한마디에 설레고 두근거렸던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엽서들을 방송국 사서함으로 보냈던가.

혹여나 디제이가 나의 신청엽서를 육성으로 읽어주는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지기도 했다.


왜 이리 옛날 라디오는 아련할까.

순박하기까지 한 시시콜콜한 사연들.

세련되지 않은 디제이의 멘트들.

라디오가 친숙했던 건 나에게만 들려준다는 착각이  들게 해서다.

라디오를 귓가에 두면 오로지 디제이는 단짝이 된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아닌 대인커뮤니케이션이 되어 내게 다가온다.

나와 디제이만의 은밀한 사건이 된다.

다음날 교실에서는 어젯밤 사건들의 난장이 되고 그렇게 감성나무는 무럭무럭 자라곤 했다.


세상에 없는 타임머신을 타고 싶다면 옛날 라디오가 제격이다.

순간이동이 실감난다.

고장도 없고 비용도 없고 멀미도 없다.

목소리는 발화순간 휘발된다.

녹음된 목소리는 그 시점의 공간을 재생한다.

음악이 거들면 그때의 향기와 냄새도 소환한다.

옛날 라디오는 기억의 힘이 세다.

지지지직

주파수를 맞출때엔 거대한 금고의 비밀번호를 일치시키는 경건한 마음이 되곤 했다.

정해진 시간의 정각 차임벨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어찌나 가슴이 콩콩거리는지 밤이 낮보다 찬란했으니 그렇게 가난한 시절을 살 수 있었구나.

지나치게 발전해버려 정나미 떨어지는 21세기를 사는 지금의 라디오는 스마트폰에 달려있다.

너무 선명한 음질인데 나의 귀는 주책스럽게 옛날 라디오를 마냥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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