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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9.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54회

속도보다 지속

54



-선생님!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집 앞 출입문에 있는 우편함은 늘 광고전단지로 채워지기에 가끔씩 살펴 정리하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고지서와 휴대전화 납부확인서가 아니면 휴지통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어 더 이상 예전처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어본 적이 없습니다. 봉투에 친필로 적혀 있는 우편물을 받아보기란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죠. 마음만 먹는다면 간편하게 생각이나 이야기를 상대에게 전달할 방법이 무궁하니까요. 게다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전할 수 있으니 더욱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아침부터 기분 좋은 새소리를 들으며 집을 나섰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까치였나 봅니다. 모든 좋은 일에는 증후가 예보처럼 다가옵니다. 물론 나쁜 일에도 그러하겠죠. 한 번은 내용을 읽어내느라, 한 번은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내느라 두 번을 읽었더랬습니다. 글자 자체를 읽으니 너무 기뻤는데, 글자 사이를 읽으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무어라 쓰고 있는 저는 사실 무어라 드릴 말씀을 못 찾고 있습니다.


소년은 이토록 답장의 서두를 장황하게 늘어놓게 될 줄 몰랐다. 줄여볼까도 고민했으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져 수정하지도 삭제하지도 않았다. 승낙 여부를 정하는 것도 노인의 건강을 알게 된 이상 즐거움으로 가득한 상태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제 욕심은 매일이라도 선생님이 이루신 마인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어찌해야 할지 주저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편지 말미에 적어주신 속담은 최근 저의 조급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주었습니다. '천천히 가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지금 저에게 필요한 충고 같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이 컸거든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좋아해서 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더 급히 가보려고 지름길을 찾던 어리석은 생각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속도에 있지 않고 지속에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셨어요.


최근 소년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조급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잊지 않고 편지에 조언을 한 것이다. 소년의 고민을 들을 때마다 노인은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그 답은 언제나 글이었다. 문자로 꼭 해답을 주었다. 대부분 직접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말들이었지만 소년에겐 정답 같아 보였다. 걱정에 대한 말은 위로의 글로 응답했다. 그 순환이 소년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다. 소년도 편지를 직접 손으로 작성해 부치는 것은 중학생 때 군에 간 사촌 형에게 위문편지를 쓴 이후로는 처음이다. 육필은 육성만큼 온몸을 쓰는 행위였다. 문자를 보낼 때와는 다른 힘겨운 쾌감이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의 답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른 묵직한 결속이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 마련되는 것 같았다.


노인과 소년의 한 차례의 편지소통이 있고 난 후 곧 만남이 이뤄질 거라는 쌍방의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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