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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30.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55회

과정은 합리를 끌어안는다

55



식당에 가면 종업원이 직접 물을 따라 주고 수저를 손님 앞에 가지런히 놓아주던 때가 있었다. 노인은 교실의 책상처럼 재미없게 놓인 식탁들 사이로 빈 컵을 들고 정수기로 향했다. 식당마다 붙어 있는 셀프라는 말은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다. 한글로 붉게 적힌 셀프라는 글씨는 몸소 혼자 챙기라는 부드러운 명령으로 인식하고 있다. 음식값에는 자잘한 서비스값이 들어 있지 않다는 말 같기도 하고 종업원을 더 이상 몸종 다루듯 하지 말라는 엄포 같기도 하다. 손님들은 배려가 사라졌다고 느끼고 식당 측은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여긴다. 노인은 식당 주인이 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손님마다 응대하는 투는 달랐으며 이는 각별한 배려로 느껴졌다. 노인은 정수기 앞에서 미지근한 물을 받아내기 위해 냉수에 컵 반을 채운 뒤 온수에 컵을 올려놓았다. 컵 등을 안으로 여러 차례 밀어 넣어 레버를 작동했으나 물은 나오지 않았다. 노인의 뒤에 짧은 줄 서기를 하고 있던 여고생이 온수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컵을 밀자 온수가 나왔다. 기계는 젊은이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어쩌면 노인을 혐오하는지도 모른다. 간단해도 기계사용의 실수 때마다 노인은 마음이 좁아진다. 몸도 쪼그라드는 것 같다. 한 번은 패스트푸드점에 갔다가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화면만 감상하다가 돌아온 적도 있다. 세상의 어떠한 키오스크도 노인을 위한 것은 없다. 기계는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는데 한 번도 편리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외국의 어느 계산대 앞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종업원과 만난다 해도 이보다는 수월할 것이다. 표정과 동작을 기계는 허용하지 않는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으면 요술램프 앞에서 주문을 잘못 왼 지니가 되는 것이다. 편리와 간편이 시낭송과 같은 문화를 더 멀리 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하곤 했다.


가까운 친구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것도 기계가 대신하는 요즘에 시를 외운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 무엇이든 검색하면 전문가 수준으로 알아내 정리할 수 있는 시대에 정답도 없는 시인의 의도를 읽어내려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마음을 음성으로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시낭송이야말로 불가능하면서 퇴행적인 행위의 원형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노인은 그렇기에 더더욱 존재할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천천히 가도 될 목적지에 지나치게 서둘러 도착하게 되는 난감한 기차여행 같은 시낭송을 피하고 싶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과정이 선물인 경우가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송아지처럼 바로 걸을 수 없게 신은 만들었다. 무려 3천 번의 넘어짐을 겪어야 비로소 걸을 수 있다. 세상의 어떤 아기도 그 과정 중에 이렇게 투덜대지 않는다.

-걷기가 적성에 맞지 않아.

-걷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

부단히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앞을 보고 다시 일어선다. 어린 시절 직립보행이 전부일 때 과정은 온전한 선물이 되었다. 시낭송을 준비하는 과정은 걸음마를 처음 배울 때의 태도와 닮았다. 아기가 걷기 요령을 찾는데 힘을 쓰지 않듯이 시낭송도 요령에 관심이 가는 순간 과정은 고단해지고 결과에 치중하게 되어 누추해지고 만다. 노인은 자판기 커피나 캔음료를 놀이 삼아 뽑아 마시며 조금씩 기계와 친해지려 한다. 모르고 탓하기보다는 알고 기피하기 위해서다. 잘 버리기 위해선 잘 가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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