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7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 길
뚫어서 구멍 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시금처럼 귀하게 나누어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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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이식
뒤숭숭하게 밤을 새우며 앉아 있다가
멍하게 졸린 눈으로 아침 맞았네.
육신은 늙고 병들게 내버려 두고
세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흘러가누나.
도부 붙여 축원할 일 뭐가 있겠나.
새로 담근 잣잎술도 탐내지 말자.
오로지 바라나니 가슴에 담긴
본연의 참모습을 빨리 깨달아야지.
|덧말|
무릇 섣달 그믐날은 음력 12월 30일을 일컫는다. 설날 이브인 셈이다.
정확한 날짜를 지명하자면 2024년 2월 9일이 옳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양력 12월 31일을 섣달 그믐날로 부르며 그 구분이 모호해졌다.
오늘밤을 제야除夜로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무의미진 셈이다.
아무렴 어떠냐!
마음이 이미 한 해의 끝에 놓여 있다.
누구나가 한 해를 마무리를 하고 새해를 맞이할 채비로 경건하다.
두 편의 시에서의 화자처럼 섣달그믐을 대하는 마음은 제각각 고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