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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Dec 31. 2023

마지막 하루

이백 열일곱 번째 글: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지요.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하는 동물이 인간이라 그런지 참 많은 말들이 쏟아집니다. 게다가 생각하는 존재이다 보니 그런 생각들이 온갖 의미를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오늘은 2023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 하루까지 치열하게 살려는 걸 탓할 마음은 없으나, 어쩌면 오늘 하루는 2023년의 마지막 날보다는 하루만 더 있으면 다가올 2024년을 맞이하는 중간 다리 같은 역할을 하는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뉴스를 듣자 하니 주요한 장소에선 11시부터 각종 타종 행사 및 신년 맞이 행사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딱 한 번 본의 아니게 이런 장소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본 적이 있었는데, 11시에 시작한다고 하면 적어도 10시쯤이면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해지기 마련이고, 심지어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못해도 9시 이전엔 가야 합니다.


거의 30년 전인 그때에도 그랬습니다. 9시 전에 도착해서 가장 앞 열에 도열해 있습니다. 그러고는 마냥 기다립니다. 뭘 위해서 그렇게 기다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수천 혹은 수만의 관중에 압도되어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그 세 시간의 기다림을 무조건 헛되다고만 할 순 없습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세 시간 동안 올 한 해를 살아온 그 궤적을 더듬어 보고, 잘한 점과 아쉬웠던 점을 생각하면 되니까요. 잘한 점에 대해선 기꺼이 자신을 칭찬해 주면 될 일이고, 아쉬웠던 점은 그다음 날인 내년으로 넘겨 또 다른 위시리스트를 하나 추가하면 되는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인간 특유의 '의미 부여하기'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타종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새해를 더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낸다는 건 거의 어불성설에 가까운 논리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분위기에서 사회라는 것이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껴보라는 말도 그다지 와닿지도 않습니다. 추위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기 전 1시간 정도 가서 기다리는 데에 3시간, 막상 본 행사는 길어야 2~30분, 행사가 끝나고 나면 그 많은 인파를 뚫고 나오는 데에만 해도 꽤 긴 시간이 소모된다. 행사가 있던 곳에서 당시 우리 집까지 2km도 남짓 되지 않는 거리였지만, 도보로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편의상 부여한 의미 있을 만한 그런 행사에 소모되는 시간이 무려 6시간 이상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새해 첫날부터 곯아떨어집니다.


신년 맞이 행사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입니다. 그렇게 보면 생각이나 종교, 피부색 등은 달라도 모든 사람들이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를 설렘으로 맞아들인다는 그 마음은 모두가 똑같다는 말이 됩니다.


괜히 초 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각자가 조용히 집에서 신년을 맞이하는 것도 의미가 충분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차피 의미라는 것이 부여하기 나름 아니겠는지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그것도 따뜻한 집 안에서 타종 행사를 TV 등으로 보며 새해를 맞이하는 걸 두고 누가 게을러터진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였습니다. 어느새 맞닥뜨리게 된 2023년의 마지막 날, 그 하루가 저무는 시점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섯 시간도 안 되어 2024년의 첫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미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올 한 해를 보낸 것에 대한 반성과 평가,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계획과 마음가짐 등, 이미 어느 정도는 완료된 상태라야 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하루. 이제 우리에겐, 보낼 것은 과감하게 보내고, 모든 것을 비운 채 새로이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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