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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02. 2024

쓴다는 지옥

0629

쓴다

쓴다

쓴다는 건 사용하는 일

펜을 쓰고 머리를 쓰고 시간을 쓰고 공간을 쓰고 감정을 쓰고 기억을 쓰고 감성을 쓰고 아직 세상에 없는 문장을 찾아가는 길의 지도를 남몰래 쓰는 일.


쓰다

쓰다

쓰는 일은 내면에 쓴 약을 복용하는 것

인생이 쓰고 관계가 쓰고 지나간 일이 쓰디쓰고 다가올 일들이 죽도록 쓰다는 걸 알기에 '글을 적는다'라는 말보다 '글을 쓰다'라고 더 많이 쓴다.


썼다

결국에는 썼다.

쓰는 건 지옥인 줄 알면서도 쓴다는 건 천국이 아닌 줄 그리 잘 알면서도 쓰고 말았다.


A:글쓰기는 어떤 맛이에요
B:그야 지옥의 맛이죠 흐흐흐흐


천국같이 황홀했다면 난 글을 쓰지 않았을 거야.


글쓰기를 서로에게 부추기는 심리에는 나 혼자만 당할 수는 없다는 심보가 있기도 해.


정말 귀하고 아끼는 건 숨기고 혼자 누리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나는 착해지고 싶어서 글을 쓰지 말라고 너에게만 은밀하게 조언할게.


쓰기 시작하면 지옥의 굴레가 펼쳐질 거야.

하루도 안 쓰면 하루가 온전하지 않은 불안한 경험을 처음부터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널 아끼니까 하는 말이야.


쓰다가 기운과 영감이 솟아나 책까지 출간하는 저주를 받을지도 몰라. 요즘같이 책 안보는 세상에 책을 내다니! 끔찍한 일이지.

사주에도 없는 작가가 되고 나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비보다 비싼 가격으로 라면냄비받침 같은 내 초라한 종이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건조한 미소를 던지며 팔아야 해. 할 수 있겠어? 너같이 도도한 녀석이!


하기사 사는 것이 지옥이니 이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있다면 더 더 더 큰 고통으로 작은 고통을 잊게 하기 위해 글을 쓸 수는 있겠다.


아무튼 너의 기존 고통보다 질기고 무심한 고통이니 각오가 되어 있다면 덤벼!


아니라면 타인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며 감상하는 독자로 남는 것도 멋지고 아름다운 일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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