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는 애씀

0646

수고로운 일들 중에서 가장 으뜸은 선별하는 일.

선택만 사라져도 삶은 이전보다 녹록할 것이다.

더 나은 무언가를 고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마음.

그 수고로움을 거두어가는 것도 경쟁력을 가지나 보다.

인터넷에서 농산물을 알아서 골라 보내주는 형태라든가

기분에 맞게 음악을 묶어 들려주는 유튜브 음악채널이라든가

시장에 가서 채소를 고르기 위해 들었다 놨다 돌려보는 수고도 없이

벽장 가득한 LP판에서 나를 위로한 음반을 고르는 고민도 없이

AI가 골라주고

전문가가 골라주고

고르고 싶었던 사람이 골라주고

골라놓은 것들 중에서 가장 많이 고르는 것을 고르면 된다.

19화 어쩌다, 시낭송 099

고르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법.

고르는 것은 실패를 가지는 능력.

바쁜 세상에서 실패는 낙오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고르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은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르는 것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의 선택은 늘 부족해 보이고 아쉬워 보여 고르고도 믿질 못해 주저하곤 한다.

고르는 것은 결과보다 과정의 애씀에 있음을.

 

오늘도 여러 개의 갈래길에서 고르고 있다.

어느 길이 완벽한 길인지

어느 길이 나다운 길인지

진짜 나의 길은 내가 고르느라 애쓴 후에 선택한 길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