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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18. 2024

소멸의 귀재

0645

사라지는 것들을 더듬어 본다.


피었다 지는 꽃

손 흔들며 멀어지는 그대의 푸른 손

뭉쳤다 흩어지는 구름

한바탕 웃음소리

장맛비 

폭설로 쌓인 지붕 위 눈

뚜렷하게 새겨진 친구의 서운한 말 한마디


결국 사라지고 만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멸은 처연하다.


아무것으로도 붙잡아 둘 수 없는 사라짐으로의 이행에 미련은 가차 없다.


사라진다

없어진다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기억마저도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원래의 없음으로 돌아가는 숭고한 회귀.

있었던 것은 한낱 잠깐의 꿈이었으니 현실에서는 사라지는 것이 제자리 찾음이 아니겠는가.




사라짐이 슬픈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것의 가치를 읽어내지 못함을 한탄하는 슬픔일지어니 상실과는 다른 감정일 것이다.


결국 사라짐은 살아짐의 변주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오늘도 수많은 사라짐 속에서 하루를 살아냈다.


사라지는 것들을 감각하고 놓치는 사이에서 소멸의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한다.


가장 잘 사라지는 것은 자연이 잘하는 일이다.


자연은 뒷모습마저도 드러내지 않고 사라지는 소멸의 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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