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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7. 2024

그냥이 재능

0654

어리석은 이는 산을 바라보며 등반을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냥 산을 오른다.


글쓰기도 그렇다.


중함이 실천으로 가기보다 기약 없는 보류로 흘러가기 쉽다.


반듯하게 쓰려고 펜을 고르다 지쳐버리고

완벽하게 쓰려고 글을 고르다 막막해지고

능숙하게 쓰려고 감을 고르다 허탈해지고

편안하게 쓰려고 때를 고르다 게을러지고


가장 글을 쓰기 시작하기에 좋은 때는 지금이고

가장 글쓰기 좋은 도구는 내 앞에 놓인 무엇이며

가장 좋은 글감은 당장 내가 말하고 싶은 그것이다.


문장은 서툴러도 무관하나

마음이 서툴러서는 안 되고


방법은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도

방향을 잃어버려서는 곤란하다.


오늘도 그냥 쓴다.


어제도 그러했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여전히 글쓰기에 있어서만큼은 지혜로운 이가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어리석은 이의 조건으로부터는 열심히 달아나려고 애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사슴은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을 테니까.


사슴의 생사는 밤새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다.

내 글의 생사는 차가운 모니터에 찍힌 활자들이다.


늘 사냥꾼들의 총에 겨누어진 운명처럼 나의 글들도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커서는 맥박처럼 달리고 채찍처럼 보채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숨죽이게 한다.


그냥이 재능이 될 때까지 그렇게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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