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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Mar 27. 2024

삶이라는 흥

의식의 흐름대로 질끈 보내야 하는 날

허망한 흥에 춤을 추고 나면 허탈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일단 멈출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멈추고 내 차 뒷좌석으로 기어들어간다. 고개를 가만히 젖히고 귀 뒤로 넘어가는 강물을 느끼면서 시간에 애걸한다. 지금 이래도 되는 걸까?


새벽마다 할 일들을 메모지에 빼곡히 적어 내려가야만 하는 수요일, 한 치도 오차 없이 잘 지워나가고 싶은데 한 순간에 삐끗한다. 예기치 않은 메시지에 불안이 스멀거리 to-do 리스트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다. 와라락...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못 보내진 메시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오늘 시간을 어디까지 보냈더라? 아, 점심. 샐러드 방울토마토 두부 명태 청포묵 시래깃국 잡곡밥... 잡것들이 섞이는 순간, 순수하게 먹은 것들이 솟구쳐 나오려고 한다. 어지럽게 흩어져 불명확한 소리를 못 견디고 기어이 관련 텍스트를 찾아내고 한 자 한 자 소리 내며 꼼꼼하게 읽는다. 수취인 불명이고 싶은 시간, 운명이다.


토마스 만의 데미안 서문을 읽으며 흘렸던 눈물이 왜 질질 흐르는 퇴폐적인 시어를 비평하는 글에 오버랩된단 말인가.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나는 느낀다. 내가 유혹한 것도 아닌데 속이 울렁거린다.


떠보려 했던 게 아닌 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괜한 미안함에 절단하는 마음들, 사람을 그렇게 알아가는 게 아닌데 실수했다. 내가 아니었던 순간들이 바로 회한으로 밀려오는 오늘이다. 부끄러움을 덮을 안개를 찾다가 영영 더 짙은 안개가 되는 마음이다. 이 불안을 안고 수업에 들어가면 미친 흥으로 춤을 추게 된다.


글쓰기라는 저 심연에 지금까지의 나를 털어낸다. 글쓰기라는 우물에 내 의식을 담가 불린다. 모든 때가 퉁퉁 불어 빠질 때까지. 오늘 나의 글쓰기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마음이다. 더러운 바닥까지 박박 긁으며 손톱에 때를 키운다. 지금 있는 그대로 참기로 한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벌주는 마음일 것도 같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닭꼬치 트럭 앞에서 흥분하고 나는 오늘 볼 시험 문제 만들며 흥분한다. 시험이 시작될 거다. 나는 학생들의 연필 긁는 소리에 들떠 축제의 드럼소리 따위는 꿀꺽 집어삼킬 것이다. 삶이라는 흥은 오늘 내내 내게 등을 돌려 숨어버리고 나는 글쓰기로 첨벙거리며 위안을 얻는다. - Happy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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