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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3. 2024

건전한 작가

0834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나쁘지 않은 작가는 세상에 대해 잘 모르겠는 사람이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더 알아야겠기에 현재에서의 앎을 불만하는 것이다


다 아는 듯이 말하는 순간 무지가 드러난다는 비밀을 자주 상기시켜 주지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장악하려 애쓰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좌불안석 한다


그래서 나쁘지 않은 글 속에서는 작가마다 특유의 불안 냄새가 난다


깊은 불안이 깃든 책은 읽으면 위안을 안겨주고

얕은 위로가 묻은 책은 읽으면 불안을 부추긴다


그것이 배제된 글들은 자꾸 읽다가 행을 놓친다


잘 모르겠는 작가는 시시때때 상상하고 길을 잃다가 길을 만들고 이정표를 붙이고 다시 길을 헤매다가 글과 길을 맞바꾸기도 한다



나쁘지 않은 글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글 안의 창들을 열어두어서이다


창을 닫아도 방이고 열어도 방인데 어떤 상태도 틀리지 않은 글들에서 다이내믹한 기운이 든다


종착지가 박힌 표지판을 보며 가지만 모두가 종착지에 도달하기 위해 표지판을 보진 않는다


풍성한 방향의 나열만으로도 선택의 질을 보장한다


다 알 것 같이 적은 글은 광활한 종착지를 한없이 협소하게 제공하는 표지판이 된다


아는 것을 쓸쓰록 글문이 자주 막히는 것은 아는 길을 반복해 가는 자에게서 여행자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너무 익숙해서 지름길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여행을 싱겁게 방해한 탓이다


그래도 매일 모르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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