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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04. 2024

신비 속으로

0845

가면 뒤에 길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살면서 흘낏흘낏 돌아보니 그 모든 것들이  아닌 게 없다


길에 걸쳐진 글은 살아낸 자의 선명한 발자국이다


죽을 각오로 살아 버린 자의 글이고

죽일 각오로 써내려 간 자의 삶이다


순간마다 마주하는 삶의 문제에 즉각적인 답을 구하려는 어리석은 기대를 잠재우기 위해 쓴다


이는 릴케의 진심어린 충고에 응답하기 위함이다


삶은 겪는 것이지 푸는 것이 아니기에

삶은 상식이 아닌  신비의 영역이기에


우주는 우주 너머가 없는   무한이어서

나는 나보다 더 작을 수 없는 점이어서


우주로부터 밤새 온 몸으로 받아낸 에너지를 푼다


별빛과 달빛이 섞여 잉크가 되고

꿈 속과 꿈 깬 내가 섞여   붓이 된다



나는 오늘도 발터 베냐민이 들려준 '산딸기 오믈렛' 이야기 속 궁중요리사의 심정이 되어 글을 쓴다


50년 전 전쟁에 져서 밤낮없이 도망치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어느 오두막 노파가 내어준 산딸기 오믈렛의 그 맛을 내지 못하면 죽이겠다니!


"폐하! 물론 저는 산딸기 오믈렛 요리법과, 하찮은 냉이에서 시작해서 고상한 티미안 향료에까지 이르는 모든 양념을 훤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믈렛을 만들 때 어떻게 저어야 제 맛이 나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폐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든 오믈렛은 폐하의 입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의 위험, 쫓기는 자의 주의력, 부엌의 따뜻한 온기, 뛰어나오면서 반겨주는 온정, 어찌 될지도 모르는 현재의 시간과 어두운 미래, 이 모든 분위기를 저로서는 도저히 마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저를 처형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독특한 왕의 취향같은 삶의 주문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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