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Oct 05. 2024

파동의 율동

0846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날에 계획하는 것과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에 아무 일도 방비하지 않는 것은 동일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흐름으로 흐르고

마음 같지 않은 분위기로 퍼져가고


상심하지도 고무되지도 않는 편에 자리한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과거는 대부분 그럴 줄 몰랐고 일부를 감지했어도 이렇게 될 운명이다


가을의 구름은 자꾸 얇게 펴진다 여름의 뭉침과 다르고  그래서 하늘은 드높아 보이고 청명하다


가을 구름에 편지를 쓰다가 코 끝에 앉은 잠자리와 눈이 마주친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수 십 개의 조각일 터이고 너는 한 마리 꼬리 붉고 가는 잠자리


잠자리 꼬리에 구름 편지를 달아주니 가볍게 날아오른다 발신자를 모르는데 비행은 분명하다


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도미노처럼 서 있다 눈을 게슴프레 뜨고 검지로 밀자 일련의 도미노가 시간차를 두고 넘어간다


그 뒤로 굴뚝에서 격발 후에 직각으로 세워 총구에 입김을 불자 탄약 연기로 새어 나온다 활화산이 도시에 있다 머지않아 용암이 넘쳐나고 재가 피어난다 회색의 축하 색종이는 쓸어도 한가득이다


때마침 왕복 7차선 도로로 추억의 카페이드가 있다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했나 보니 나라를 위해 뭘 좀 해볼까 한단다 음식값만 선불이 아닌 시대를 산다


약의 유통기한을 보니 의사가 말한 환자의 기대수명보다 길다 약이 부러워보인 건 처음이다


나보다 나은 처지는 늘 나의 대척점에서 유리하게 소멸하고 있다 장렬해서 어색하고 무심해서 기특하다


아침은 가공되지 않은 식자재로 공복을 달랜다 위장은 천천히 깨어나고 코에서는 노래가 나온다


오늘도 어찌 될지 몰라서 두근거리고 저찌 될지 휘청거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게 분명하지만 난생 처음 살아보는 유일한 하루임에는 틀림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