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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08. 2024

버섯의 템포

0849

들었던 이야기를 쓰기에는 이미 낡아서

알았던 이야기를 쓰기에는 너무 닳아서


금 느끼는 나를 쓴다

지금 놀라는 나를 쓴다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도 새로운 나는 있기에 쓴다


들었던 걸 쓰기 전에  나를 관통해야 사실이 진실로 변모하며 대체가능한 진부로부터 이야기를 구한다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은 더 위험하다  나도 모르게 거침없어지기 때문이다   쓰기에서 '물 흐르듯이'는 치명적이다 짙은 오류와 관습마저 안고 휩쓸간다


칼비노가 창조한 마르코발도가 가진  '사막 위 모래 위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시선을 새삼 되짚어 본다


나뭇가지 위에서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 기왓장 끝에 매달린 깃털, 말 잔등에 앉은 등에, 탁자에 좀이 쏠아 생긴 작은 구멍, 보도 위에 으깨진 무화과 껍질...


이것은 모두 사색의 대상이자 영혼의 욕망들이고 존재의 초라함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계절의 변화로 이어가 본다


낡아가는 가을 햇살

확실하게 변심한 바람결

잎 다 떨구고 붉은 감만 매달고 선 감나무

그리고... 헐린 제비집 자리


다시 보는 법을 배운다


이제껏 본 것들은 헛 것이었으니 다시 고쳐 본다


도시 후미진 곳에  무심코 자란 버섯들을 볼 수 없었기에 나의 글들은 형편없이 서둘렀었구나


사는 것은 쓰기의 반 템포
쓰는 것은 보기의 반 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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