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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타인

0848

by 이숲오 eSOOPo

중요한 행사가 얼마 남지 않아서 미루다 미룬 일을 오늘 하려고 한다


대사를 준비하며 계획을 한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만나는 목소리에 저절로 떨린다


일이니까 한 것인데 고백을 하는 것만큼 심장이 뛴다


맡은 일은 사람을 거쳐야 성사가 되는 것이 태반이다


늘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일에 연결된 사람이 어렵다


내 성격이 이상한 것인지 일의 성질이 이상한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천천히 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상대는 곰도 아니고 범도 아니었는 줄 이제야 알게 된다


게다가 너무나 친절해서 나의 간과 쓸개를 건넬 뻔 했다



생각보다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단정짓고는 아까와는 다른 심장으로 다른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돌린다


아까와 다르게 톤이 차갑다


역시 세상은 단단하고 무섭다


일이니까 하는 것인데 협박을 하는 것만큼 심장이 터진다


그의 뒤춤에는 내 일의 일부가 포로로 잡혀 있는 것 같다


잘 달래야 하는지 잘 속여야 하는지 몰라서 주저하는 사이에 이미 포로는 사라지고 내가 포로가 된다


이럴 때에는 요령보다는 정면 돌파가 최선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말이 섞이면서 거창해지고 난해해지고 유일해지는 것이 참 희안하다


노련한 이들은 이를 태연하게 다룰 것이다


나의 모든 타인과의 일들은 여전히 힘들고 제 다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흔한지 난감하다


그것이 사회생활이라면 나는 참 부적응자의 수장 쯤 될 것 같다


상을 받았다면 우리집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모자라 다락방에 산을 이룰 것이다


타인은 내게 지옥이라 여기기보다 지옥문의 무서운 문양 같아서 지레 겁을 안고 다가간다


그 문양이 귀여우면 좋겠는데


그러면 지금보다 더 용기내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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