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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4. 2023

익숙한 타인

0397

(주의사항 :  이 글은 우울, 슬픔, 빈정상함, 억울함, 속상함, 화딱지남, 씁쓸함을 품은 네거티브 감정상태에서 제조되었습니다. 위의 감정상태에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는 분들은 패쓰를 권장합니다.)


1

날씨 중에서 비가 가장 문학적인가 보다.

감성을 이토록 자극하고 부추기는 걸 보니.

거대한 비커 같은 세상이 비로 채워지고 브런치스토리에도 비에 관한 글로 처벅처벅 쌓인다.

커다란 무지개 같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 이야기를 피해야지.

나의 글에는 해가 쨍쨍 비쳐 뽀송뽀송하게 기분을 말려야지.

아니면 함박눈이 펑펑 내리게 해서 눈사람처럼 단단한 의지를 다져야지.

비에서 멀어지려다 기껏 다다른 곳에는

비정한 이야기

비통한 이야기

비겁한 이야기

비인간적인 이야기

비실비실한 한 남자의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서성거리며 내 손을 덥석 잡는다.



2

점점 낯익은 남들이 두렵다.

익숙해지는 타인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다.

낯섦에서 낯익음으로 넘어가는 것은 분명 반길 일이나 대가가 만만찮으니 그게 힘겹다.

각자만의 언어로 충분히 생채기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꼬집는다.

상대를 알았다 싶을 때가 가장 모르는 꼭짓점에 다다른 줄도 모르고.

서로가 아름다워하는 부분이 다르단 걸 맞장구를 치다가 우연히 알게 되고는 어리둥절해한다.

틈사이가 벌어질수록 씹던 껌을 잘게 쪼개 그 틈을 메우고는 안심하는 웃음을 지어본다.

아주 모르는 것이 안전한 걸까. 적어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처지를 은밀히 듣다 보면

사정을 흘낏 들여다보다 보면

내 서운함을 슬그머니 건네다 보면

각자의 욕망을 질질 흘리다 보면

마치 서로가 비슷하다는 오해를 담보로 선뜻 관계의 쓸개 한쪽을 건네게 된다.

이제는 둘 만의 지도를 받아든 게 된 것이니 여행이 될지 수난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주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마주 쥔 지도를 세게 당겨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만 남았다.



3

슬플 때 노래를 지을 수 있고

우울할 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답답할 때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슬플 때 슬픔이 히노끼탕도 아닌데 몸을 슬픔 안에 푹 담그고 있고

우울할 때엔 우울이 나를 묶어놓은 듯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답답할 때엔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표정을 짓고는 그러고 있으니 무능의 끝판왕이다.

노래도 짓지 못하고 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춤도 출 줄 모르니 글이 생명의 동아줄이다.




|무용의 변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글을 써보았다. 혹자는 일기라고 하고 혹자는 낙서라고 하더라. 길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예뻐 뿌리째 옮겨와 집 화단에 심었다가는 오랜 기간 꽃을 감상할 수 없다. 살던 곳의 충분한 흙과 주변의 잡초와 들풀들도 함께 데리고 와서 심어야 야생화는 모른 척 살아준다. 오늘의 글은 야생화 주변의 잡초일지도 모른다. 별로인 상태를 아닌 듯 묘사할 재간이 없다. 글동산에 올라 크게 소리를 지르는 글이다. 차라리 아무도 못 듣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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