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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l 14. 2023

비 오는 아침

여덟 번째 글: 하늘의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날씨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12년째 대중교통을 이용해 통근하다 보니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 운전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그 정도도 심하고, 날씨의 정도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고스란히 맞아야 될 때도 더러 있다. 우산이 있어도 있으나마나 한 그런 날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상쾌한 기분으로, 혹은 어떤 날은 피로에 절어 집을 나선다. 대체로 일어나 창밖부터 내다보며 날씨를 확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날씨를 알 순 없다. 한 손엔 늘 그렇듯 지난밤에 읽던 책을 든 채로 말이다.

건물을 나서기 직전에 우선 땅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내게는 날씨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자료가 된다. 눈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빗방울이 보이면 기분이 싹 달아난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내뱉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이때 누가 옆에 있으면 마음대로 싫은 소리도 내뱉을 수 없다. 손에 들었던 책을 얼른 가방 속에 넣고 늘 가방 옆구리 주머니에 꽂아 넣고 다니는 접이식 우산을 꺼내 들어야 한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마는 출근과 퇴근 시간만 피해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비의 양에 관계없이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또 때로는 빗소리를 들으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 낭만이라도 있다지만, 지금처럼 적지 않은 비에 게다가 바람까지 불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일단은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해서 두 개의 손 중 하나만 쓸 수 있다. 손 하나, 즉 왼손은 이날만 되면 그냥 없는 손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보행 중이라면 오른손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특히 어려운 건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로 끼워놓은 채 카톡이나 메시지 보내기이다. 다른 연락은 잠시 후에 해도 되지만, 아침에 학부모에게서 오는 연락은 그 자리에서 답장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버스를, 기차를,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물이 뚝뚝 흐르는 우산을 든 채 타야 한다. 내 것도 내 것이지만 우산의 물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내 앞자리나 옆 자리에 앉거나 서면 그곳이 아무리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도 책을 꺼내 읽을 수 없다.

손은 늘 젖어 있는 상태다. 편한 청바지를 입었을 때는 바지에라도 물기를 훔쳐낸다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도 없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눅눅한 느낌까지 떨쳐낼 순 없다. 때로는 그 눅눅함이 곧바로 꿉꿉함으로 이어져 불쾌감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으레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들고 다니는 책도 가방 속에 넣어놔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난 책이 비에 젖는 걸 참을 수 없다. 책이 비에 젖는 날이면 그냥 하루를 죄다 망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한 번은 가방에 넣어둔 책이 비에 흠뻑 젖어 책의 상당 부분이 들러붙은 적이 있었다. 폭우주의보가 떨어진 날로 기억하는데, 미련 없이 그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서 아무리 읽고 있던 뒷부분이 궁금해도 비가 오는 날엔 절대 가방에서 책을 꺼내 들지 않는다.


그나마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지금처럼 이렇게 폰으로 글을 쓰면 된다. 비가 와도 이젠 할 수 있는 일이 생긴 셈이다. 생각을 가장한 채 차창에 기대어 졸지 않아도 되고, 물끄러미 밖을 주시하며 허락도 없이 내리는 비를 더는 원망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비 오는 게 내 마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정 안 되면 밤 사이 비가 내리고, 낮엔 뚝 그쳤으면 좋겠다. 그것도 어려우면 출퇴근 시간만 피해서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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