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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입력하세요
모바일에서는 '내용을 입력하세요'에서 커서가 깜빡인다.
디바이스는 제목이든 내용이든 입력하기를 요구한다.
작성하라는 말보다 건조하고 중립적이고 기계적으로 느껴진다.
얼핏 보면 그다지 문제가 없어 보이나 이내 요구사항이 옳은가를 반문하게 된다.
여기에서 글 쓰는 이는 혼돈이 발생한다.
이미 입력자료를 가지고 있느냐고 재촉하는 듯하다.
준비되어 있는 이에게만 관대한 플랫폼인가를 회의하며 주저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타이핑으로 입력할 준비보다 마음으로부터 문장이 출력되지 않았는데 어쩐담!
글쓰기는 기계와 달리 입력이 아닌 출력이 먼저 일어나는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볼 때마다 경직되는 건 나만 그럴까.
그렇다면 명령어를 '입력하세요'가 아닌 다른 대체 문장으로 무엇이 적절할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페이스북에서는 게시물을 만들 때 뜨는 문구다.
흥미롭다.
무언가 말을 건네는 의문형의 문장이 대답을 유도한다.
사람이 물은 것은 아닌데 나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것이 고맙기까지 하다.
생각은 근황, 취미, 취향, 사상, 농담, 자랑, 비밀 등을 아우른다.
당신의 생각을 세상에 이야기해 보라고 부드럽게 권하는 것이다.
물론 브런치스토리에서의 글쓰기는 SNS의 그것과 성격이 다른 건 사실이다.
좋은 질문이 다양한 답변들을 생산한다.
어떻게 묻느냐가 답의 질을 좌우한다.
브런치스토리의 '입력하세요'는 스스로 질문을 제시하라는 것으로 보인다.
SNS에서는 대답하는 입장으로 글을 쓰지만
브런치스토리에서는 질문하는 입장에서 글을 쓴다.
처음 문제제기를 했을 때에는 '입력하세요'의 대체 문구를 고민했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곳의 성격에 따라 질문의 형태로 글쓰기를 독려하느냐 답변의 형태로 글쓰기를 유도하느냐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가닿았다.
그렇다면 글 쓰는 이가 보았을 때 제시문구가 거부감 없이 전달되고 글을 쓰는 행위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덧말|
사실 브런치스토리에서 글 창에 희미하게 박혀있는 '입력하세요'라는 문구의 목적은 글을 쓰는 것을 요구하는 문구라기보다는 텅 빈 공란에서 '이곳에 적으면 됩니다!'라는 위치제시의 역할이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제기를 한 것은 안내 문구는 한 시대 혹은 한 집단의 언어감수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글쓰기가 세상을 조용히 아름답게 바꾼다는 것을 믿기에 글을 쓴다.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유효하고 당연한 문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