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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09. 2024

강가에 서서

0850

천.천.히.읊.는.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땅거미가 지고 있다


강 너머 산등성이로 태양이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다


강에는 산 모양이 거꾸로 비추고 구름 사이로 낮달이 뜨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눈으로 찍은 사진이 기억 속에 하나씩 꽂힌다 잊힌다 그리고 지겨운 일상이 들썩거린다


강가에 서서 황인숙의 시 '강'을 읊조린다


강은 시인의 시처럼 대나무밭이란다


눈도 피하면서 말할 것들이 얼마나 무수한지 모른다 가나다순으로 말할지 시간순으로 말할지 감정순으로 말할지 고민하다가 강에게 묻는다


생각은 생각이 질투해서 근심이 상심으로 고민이 걱정으로 탈춤을 춘다 그래서 강에 직접 가라고 한 거였구나 강의 귀보다 강의 지청구가 살벌하다


강가에 서니 불규칙한 생각들이 강강수월래하면서 고르게 정리된다


수시로 잡히는 생각들을 조약돌마냥 강으로 던진다


물수제비처럼 수면을 버티다가 가장 깊은 지점에서 사라진다


그곳에 담담한 눈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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