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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Oct 23. 2024

원작의 유혹

0864

서리가 내린다


추수를 마무리한다


임금의 행차 앞에 세우는 둑에 제사를 지낸다


경칩 이후로 일곱 달 보름 만에 지내는 둑제다


가을밤이 깊어갈수록 추어탕 끓는 소리가 넘친다


내리는 동안 올라가는 것들을 떠올린다


곁에 없지만 가늘게 연결되어 반대로 작동된다


그것의 고독한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


새옹지마의 원리는 그저 동전뒤집기가 아니다


주도권을 쥐는 순간 레임덕이 되는 게 삶의 순리다


기간은 하루나 일 년이나 멀리서 보면 찰나일 뿐



최근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 두 편을 보았다


하나는 문장을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었고

하나는 서사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 놓았다


둘 다 문학이 영화로 재현될 때의 미덕을 놓친다


문학의 감동은 행간의 미지에 있는데 확장된 이미지는 그 막대한 범주를 아우르기 버겁다


명징할수록 비껴가고 느슨해진다


뛰어난 원작에 너무 기대지 말고 오히려 배반하는 해석과 네 번째 시선을 장착하고 다시 써야 한다


가장 강력한 오마주는 원작을 잊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작에서 감동받은 순간들을 질질 흘리고 그 지점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관객에게 들키고 마는 감독만큼 매력없는 예술가는 없다


원작의 유혹을 잘 숨기는 예술가만이
원작 밖의 관객을 완벽하게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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