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소음을 피해 한 시간을 달려왔는데 무색하다 강은 흐르고 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여자들의 무리가 새소리 같다 서로가 주고받는 농은 알아듣기 힘든 구조다 받아 쓰면 한편의 시가 될지도 모른다 노란 나무 붉은 나무는 한여름 잘 견딘 흔적이다 나의 취향만 잡고 가면 그게 정답이지라고 누가 말하는 소리를 넘겨 듣는다 찻잔은 비었고 눈사람의 볼처럼 희고 차다 현대적인 것이 나는 좋더라 그걸 제안할 거야 앞의 말을 놓치니 주장도 다감하게 들린다 무릎 위에 펼쳐놓은 책 사이로 단풍잎 하나가 내려앉는다 이 잎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자라 책갈피가 될 꼬야 마지막 안착한 곳이 꿈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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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장자의 무위철학을 실천하거나 하이데거의 놔두기Gelassenheit에 빠질 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지는 계절에 대한 예의다 그냥은 완벽한 이유가 된다 무엇을 하려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만 못한 함정에서 나를 구하고 싶다 골키퍼가 페널티킥에서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옆으로 몸을 던지며 가운데로 오는 공을 놓치는 어리석음은 축구에서 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격렬한 빈둥은 위대하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업적은 깊은 빈둥에서 탄생했는지 모른다빈둥은 빈둥지의 창조적 공간을 가진다 빈둥에서 염치의 함량만 덜어내면 빈둥은 예술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겹쳐지는 마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원심분리기에 넣거나 짤순이에 넣고 돌려야 하나 마음들을 분리해 놓으면 고분고분해질까 마음은 상대를 배려하느라 아직 끝맺지 못한 끝말잇기 같아서 누군가 멋없게 원소기호로 끝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케이! 칼륨! 내 나이를 물어볼 때 원소주기율표의 원소로 대답하던 유치한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그게 멋스럽다 여겼는데 원소처럼 산다면 일흔아홉에는 금빛 같은 삶을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