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11. 2024

지금이 처음

0883

날짜에 1이 나란하다


열매를 맺은 작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농업인들은 오늘만큼은 풍성한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전쟁에 나선 군인들의 도열

유엔참전용사들을 전 세계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날이다


놓치지 않아야 할 숭고한 그림 앞에서 빼빼로를 서둘러 떠올리는 건 다소 민망하다


차라리 1의 네 번 외침을 처음으로 돌아가는 구호로 이해하는 건 어떨까


올해의 첫 마음이 가물가물하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처음을 더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처음은 과거의 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현재를 응시하고 지금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처음을 감각하는 것은 아닐까


지나간 길을 복기하는 것은 현재를 단단하게 하는 지혜


산다는 건 '처음'들을 쌓는 일


유독 오늘은 이제껏 쌓은 '처음'들을 들쳐보고 싶어진다


얼마나 거룩했던가

얼마나 기특했던가


반짝이다가 금세 시들해지고 금세 바래지는 처음의 속성


처음만 가질 수는 없지만 처음의 첫 장을 넘길 때의 마음은 자주 상기해야지


처음이라서 처음만 가질 수 있는 처음의 속살 처음의 숨결 처음의 손길 처음의 시선 


처음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처음의 기운 처음의 향기 처음의 기억 처음의 서툰 손짓


하나 하나 하나 하나


1을 하나라고 부르니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기도 하고 무어라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을 선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일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이제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의 이름표가 4자리로 가득찬다


365일 중 52일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마무리하라는 엄중한 명령같아 보인다


한 해가 이렇게나 지났는데 오늘만큼은 첫 날 같고 첫 날이고 천천히 돌아보는 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