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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19. 2024

상상이 전부

0891

비스듬히 누워 허공에 손가락으로 직사각형 창을 그리고 연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시원하다


상상이 상상 아닌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언제나


현실이 이미 이전의 상상이 낳은 자식들이 아닌가


인류 중 상상하지 않는 자가 무정자이고 불임자다


남들이 상상한 것들만 소비하는 비루함을 추방하고 내가 상상한 것들의 부산물들을 찬장에 올려놓는다


특히 글쓰기는 상상이 생산한 결과물들의 목록이다


상상하지 않고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건 기정사실


전화통화도 그렇고

카드결제도 그렇고

문장쓰기도 그렇고

문학읽기도 그렇고

약속하기도 그렇고

운전하기도 그렇고

강의하기도 그렇고

음식섭취도 그렇고

잠을 자고 집을 짓고 사랑하고 길 떠나는 것도 상상

미래에 여전히 살아있으리라는 기대와 예측도 상상이고 이제껏 그러했으니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혹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도 상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듯 대하고 다루는 것도 상상


내 몸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상상의 자기장 속


왼발을 내딛는 것도 상상이 하는 놀라운 체험이다


상상의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상대의 발화만으로는 상대와의 소통이 불가하다


의중도 의도도 의지도 의욕도 상상이 포획할 일


어쩌면 인간도 새처럼 날 수 있는 조류일지도 몰라 상상이라는 두 날개를 뇌의 겨드랑이에 단 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오늘은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그간 뻣뻣해진 상상의 웅장한 날개를 힘껏 꺼내 펴서 날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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