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있는 정물
신 미 나
그대라는 자연 앞에서
내 사랑은 단순해요
금강에서 비원까지
차례로 수국이 켜지던 날도
홍수를 타고
불이 떠내려가던 여름
신 없는 신앙을 모시듯이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과육을 파먹다
그 속에서 죽은 애벌레처럼
순진한 포만으로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
죽어가며 슬어놓은 알
끝으로부터 시작이
말려들어갑니다
무엇이든 방의 창을 통과하면 변심한다
당당한 태양은 고분고분해지고
수줍은 달빛은 의기양양해진다
거리의 소음들은 깃털이 되고
마을의 냄새들은 달큰해 진다
창은 벽보다 수면에 가까워서 다소 허용할 줄 안다
한번도 고스란히 허락하지 않고 한번은 관절을 꺾어 존재를 확인시킨다
살아간다는 것이 통과할 때마다 굴절되는 마음이 전부라서 창은 가는 곳마다 버젓이 있다
창을 든 기병처럼 건물마다 공간마다 창은 대항하듯 수직으로 서 있다
그래서 창 앞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대 앞에 서면 우리 사이에 창이 자라나 우리를 가로막는다
오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다가가면 텅텅 창에 부딪히는 나의 마음이 성에 같다
영하의 기온도 아닌데 창에 맺혀 불투명한 무엇이 되어 허옇게 얼어 붙어 있다
그대가 무심코 마련해준 창 앞에 서면 나는 단순한 자연 속 짐승이 된다
어흥 어흥 노래하다가
뻐꾹 뻐꾹 자지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