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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한뼘이나 자란 날에는

챌린지 9호

by 이숲오 eSOOPo

복숭아가 있는 정물


신 미 나



그대라는 자연 앞에서

내 사랑은 단순해요


금강에서 비원까지

차례로 수국이 켜지던 날도


홍수를 타고

불이 떠내려가던 여름

신 없는 신앙을 모시듯이


내 사랑에는 파국이 없으니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과육을 파먹다

그 속에서 죽은 애벌레처럼

순진한 포만으로


돌이킬 수 없으니

계속 사랑일 수밖에요


죽어가며 슬어놓은 알


끝으로부터 시작이

말려들어갑니다





무엇이든 방의 창을 통과하면 변심한다


당당한 태양은 고분고분해지고

수줍은 달빛은 의기양양해진다


거리의 소음들은 깃털이 되고

마을의 냄새들은 달큰해 진다


창은 벽보다 수면에 가까워서 다소 허용할 줄 안다


한번도 고스란히 허락하지 않고 한번은 관절을 꺾어 존재를 확인시킨다


살아간다는 것이 통과할 때마다 굴절되는 마음이 전부라서 창은 가는 곳마다 버젓이 있다


창을 든 기병처럼 건물마다 공간마다 창은 대항하듯 수직으로 서 있다


그래서 창 앞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대 앞에 서면 우리 사이에 창이 자라나 우리를 가로막는다


오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다가가면 텅텅 창에 부딪히는 나의 마음이 성에 같다


영하의 기온도 아닌데 창에 맺혀 불투명한 무엇이 되어 허옇게 얼어 붙어 있다


그대가 무심코 마련해준 창 앞에 서면 나는 단순한 자연 속 짐승이 된다


어흥 어흥 노래하다가
뻐꾹 뻐꾹 자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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