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16호
고딕 숲
송 재 학
전나무 기둥이 떠받치는 숲 속
습한 고딕체의 나무가 훌쩍 자라서
연등천장의 내면을 떠받치는 중이다
고딕 숲에서 내 목울대는 하늘거리는 풀처럼
검은색 너머 기웃기웃,
수사복 사내들의 검은색이
나무의 뼈라면
검은색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의 죽음/자살이다
누군가의 메마른 입술에서 나뭇잎이 꾸역꾸역 자랄 때
내 안팎에서도
열리고 닫히는 새순 아가미들의 연쇄반응들,
숲을 떠다니는 부레족 나뭇잎을 만나도 놀랍지 않다
고딕 숲의 부력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관습에서 열거되는 투니카와 쿠쿨라의 수도복 입은 발자국이 모여들겠다
오래된 불빛이 울울 침엽수를 밝히려 한다면
내 묵언은 닫아야 할 입이 너무 많다
모든 날은 없었던 시절에게 처음 들려주는 이야기
본 듯한 본 적이 없는 듯한 광경이 불시에 일어나는
에구머니나
들려주는 이와 들으려는 이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고
이미 끊임없이 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하고 있고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 붙이고
이야기 위에 이야기가 덧입혀지니 없던 온기가 피어나 새알 같은 이야기가 부화하고 껍질을 깨고
주머니를 열어 보이니 보따리를 내놓으라 한다
귀를 사방으로 막아도 비집고 들어와 방수는 쉬워도 방화防話는 방음보다 그토록 어렵다더니만
이제부터 이야기 인플레이션이다
너도나도 넝마처럼 걸치고 다니겠구나
일찍 일어나 밤새 폭우처럼 내린 이야기들을 빗자루로 쓸어 모아 모닥불로 태워야지
보드라운 재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