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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Apr 04. 2020

글쓰기의 의미



나의 역사를 거슬러 돌아보건대, 내게 글쓰기란 일상적인 일과 중 하나라는 것. 그리고 내 안에 떠도는 실체가 없는 생각이나 감정에 이름을 붙여준 후 떠나보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령처럼 나의 경계 안과 밖을 떠도는 번민이나 상처에 언어를 갖게 함으로써 그것이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이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마음의 풍경을 그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떤 날은 화창한 햇살이 비치고, 따스한 바람도 불었다. 어떤 날은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절망적 기분으로 언덕에 올라 홀로 울었던 것처럼 비관적인 색채였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정도 그림을 그려놓고 나면 일기장을 덮을 수 있었다. 내 안에 들러붙어 떠나지 않던 유령들이 떠나가고, 상처의 흔적을 자각하는 시간만이 남았다. 결국,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에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고통과 번민은 글쓰기의 훌륭한 재료가 되어준다.    

 

최근에는 조금 더 잘 쓰기 위해서, 글쓰기를 연습하기도 한다.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인 걸까. 늘 독백처럼 묻어둔 마음을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어 시작했던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서는 조금 더 통용되는 어법과 흐름이 필요한 법이니까. 아주 잘 차려진 팔 첩 반상까지는 못되더라도, 수고해서 차린 한 끼 정도의 식사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거다.     


지인이나 친구들과 가끔 만나지만 때로는 대화가 겉돌고,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단편적인 사건들과 표피에 머무르는 겉마음만 나누다 돌아오는 날에는 더 헛헛해지기도 한다. 어디까지를 이야기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그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글쓰기는 많은 부분을 허용해준다.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 나의 토로를 담아준다. 조금 더 자주, 많이 쓰게 된다면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에도 그 폭과 깊이가 더 확장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느끼는 나만의 이유 모를 불안과 초조, 두려움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담담하게 서로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내게 글쓰기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의 일과이고, 나를 세상과 화해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지금은 나에 대해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나이를 이 정도 먹었는데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니. 하지만 ‘나’라는 사람도 세월이 흐르면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하는 존재다. 그러니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모두 알지 못할 수 있다. 익숙하게 느껴왔던 감정이 어제의 정의와 다를 수 있다.      


어느덧 봄이다. 코로나 일상에 집에 콕 박혀있다가 아이들과 동네 뒷산이나 놀이터로 나간다. 걷다 보면 다시 찾아온 봄의 꽃들이 눈에 가득히 들어오고, 그 아름다움에 찬탄하게 된다.


몇 번의 봄을 더 기록할 수 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의 얼굴과 외양은 점점 늙어갈 것이다. 하지만 내면만큼은 이렇게 다시 찾아오는 아름다운 봄날처럼, 신선한 부활을 자주 마주하길 바란다.     


그 부활을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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