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무수한 영화 가운데 누구나 마음 언저리에 남아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앙: 단팥 이야기>가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이제 고인이 된 배우 ‘키키 키린’이 나오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적 아버지의 일로 3살에서 7살까지는 일본에서 생활했었는데, 그때부터 그녀의 얼굴을 TV에서 종종 보곤 했었다. 어렸을 적에도 강한 인상과 뚜렷한 이목구비, 독특한 이질감 등으로 그녀는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얼굴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일본 영화를 통해 그녀의 건재함을 발견했을 때는 어린 시절의 향수와도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거의 모든 영화(<어느 가족>,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에 그녀를 출연시킴으로써 나를 ‘키키 키린’이라는 존재와 다시금 만나게 했다.
1943년생인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1966년, 23살의 나이로 시작된다. 그리고 약 두 해 전인 2018년 9월, 키키 키린은 75세의 나이로 생을 떠났다. 드라마와 방송, 영화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던 그녀.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이름을 남겼지만, 나는 이 작품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통해 그녀를 기억하고 싶다.
2.
봄의 꽃, 흐드러진 벚꽃 아래 키키 키린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빛나는 햇살 아래에 멈추어 서더니 마치 이 세상에 지금 막 도착해 봄을 처음 맞이한 것처럼 삶의 정경을 새로워한다. 떨어지는 꽃잎들과 바람에 흔들거리는 잎사귀에도 두 손을 맞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모든 자연의 생명에 말을 건네고, 화답한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다시 이 영화가 떠오르고 감상을 쓰고 싶었던 것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계속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봄날의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던 날 빛나던 키키 키린의 모습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크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도라야키(일본의 전통적이면서도 서민 간식이 되는 앙꼬빵)를 만들어 파는 ‘센타로’(나카세 마사토시)의 가게에 만으로 75세인 ‘도쿠에’(키키 키린)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며 찾아온다.
육체적으로 고된 작업이라며 에둘러 거절한 그에게 도쿠에는 자신의 이름을 먼저 소개하고, 다시 찾아와 스스로 만든 팥소를 먹어보라며 건네주고 간다. 쓰레기통에 버렸던 팥소를 다시 꺼내 한입 베어 문 센타로는 “그런 맛은 처음이었다”라며, “솔직히 충격적이었다”라고 ‘와카나’(우치다 카라)에게 고백한다.
와카나는 그의 앙꼬빵 집에 자주 오는 중3 소녀.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와카나는 고등학교 진학마저 불투명하다. 센타로의 가게에서 매일 재잘거리며 웃고 있는 동급생 소녀들과는 달리, 발걸음마저 조용히 숨죽이며 들어오는 와카나. 센타로는 그녀의 사정을 어떻게 아는지, 남겨두었던 도라야키 실패작들을 집에 가서 먹으라며 건네준다.
다음 날 도쿠에가 다시 왔을 때, 센타로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역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제안한다. 11시부터 개시니, 9시까지 와달라는 센타로의 말에 도쿠에는 단팥을 만들려면 “해님이 나오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단팥의 이야기. 팥소를 만드는 과정에는 오랜 기다림과 신중함, 고된 노동, 찰나를 아는 손길, 그리고 다시 기다림이 있다.
처음엔 팥알을 물에 담가 시간을 들여 불리고 색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후엔 흐르는 물에 담가 불순물이 천천히 내려가도록 한다. 중간 불로 천천히 끓인 후 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사려 깊게 젓는다. 두 손으로 아이를 안듯 당을 받아 팥에 넣는다.
도쿠에는 이제 “바로 끓이지 않고 팥과 당이 서로 친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젊은 연인들의 맞선’과도 같은 것이라고. 뒷일은 그 둘이 알아서 할 것이라며 소녀처럼 웃으며 다시 기다린다. 다시 불에 들어가 자신을 온몸으로 녹여내는 단팥에 ‘힘내서 잘해봐’라고 나직이 말하기도 한다.
장사를 개시할 때쯤엔 센타로의 얼굴에 이미 흥건한 땀과 고된 노동의 흔적이 묻어있다. 도쿠에의 가르침으로 센타로의 가게는 활기를 띠고 사람들은 줄을 서기 시작한다. 새로워진 단팥의 맛에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노동의 종말을 고하는 시대. 일하지 않고서도 돈을 버는 방법을 예찬하는 시대에 그들이 팥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다시금 노동의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하는 삶만이 가질 수 있는 삶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 그들은 인생을 순례하듯 팥을 만들었다.
3.
모든 드라마에는 굴곡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도 화창한 봄날만 지속하진 않는다. 노동이 점점 힘겨워지는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다. 그 굴곡에는 도쿠에 할머니의 인생, 조용한 비극이 숨겨져 있다.
“아무 잘못 않고 살아가는데도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 도쿠에의 편지 中
그녀는 한센병 환자로 사회와 동떨어진 곳에 격리되어 살아가던 사람이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와 떨어져 밖이 보이지 않는 창문 안쪽 어딘가에 갇혔고, ‘영원히 이 담장 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들의 존재는 두렵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고, 평생을 숨겨져야만 했다.
실제 일례로 1996년까지 반세기나 이어져 온 일본의 ‘우생보호법’(장애인이나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강제불임 정책) 등 얼마나 많은 혐오와 폭력, 모멸이 창문 너머 이면에 도사리고 있었을지 가늠케 한다.
더불어 최근, 코로나 19로 사람들은 자신을 격리하고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고 때로는 날 선 비난과 혐오를 넘나들기도 한다. 서로 간의 거리를 두고 집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 일상을 지켜보고 실제 경험하면서, 그녀가 짊어진 비극의 무게를 감히 상상해보기도 한다.
4.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팥이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를 듣는 일이랍니다.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고 있습니다.”
- 도쿠에의 편지 中
도쿠에는 센타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에게 찾아왔다. 닫히고 가려진 창문 너머의 세상을 꿈꾸다, 시대의 변한 지침에 따라 산책을 거닐고, 센타로 가게 앞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앞에 멈춰 선 것이다.
갇혀있던 이전의 자신과 같이 심연에 어둠과 절망만이 가득한 센타로의 눈빛을 보며 ‘무엇이 너를 그리 슬프게 하는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도쿠에는 먼저 자신의 이름 넉 자를 건네며, 센타로의 일상에 걸어들어왔다.
‘나무와 숲을 꿈꾼다’라는 뜻의 예명, 키키 키린(樹木希林).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그런 그녀의 이름을 영화에 새기듯 사람의 마음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나무와 숲의 움직임으로 대신해 표현해냈다.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유효하다. 이야기의 모든 순간과 순간, 장면의 한 컷 한 컷이 제 역할과 쓰임을 오롯이 다하겠다고 약속한 듯 수놓아진다. 삶이 이토록 아름다웠는가, 묻게 될 정도로.
도쿠에가 떠난 후에도 봄은 다시 찾아온다. 홀로 자신만의 도라야키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센타로. 응축된 자기혐오와 슬픔이 거둬진 듯 센타로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그가 힘 있게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