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비와 폭풍우 치는 밤을 조용히 견뎌내고 나면 때로는 따사로운 햇살이 깃든 아침이 온다. 궂은 날씨를 침묵으로 견디는 날도 있고, 원망 어린 마음이 차올라 하늘에 종주먹을 대며 분노하기도 한다. 소용없는 분풀이. 그러다 잠이 든다. 다시 아침이 오고 어제의 화는 노곤한 피로로만 남는다.
아침이 오고 해가 높이 떠오르면 나무도 제 할 일을 한다. 힘겹게 가지를 뻗고, 마디 끝의 새순을 돋우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것은 나무만이 아는 제 몫의 삶이다. 새순이 자라 싱그러운 잎새가 되었을 때, 그 잎새 사이로 기적과도 같은 꽃잎이 자기만의 색을 화려하게 뽐낼 때, 사람들은 비로소 나무의 수고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 시간까지 나무는 다시 저녁의 적막을 홀로 견디고 내일의 새벽을 기다릴 것이다.
때로 찾아오는 새의 지적임, 새의 동반은 나무의 큰 즐거움이다. 그들은 나무가 가지 못했던 나라의 풍경과 일상을 전해준다. 나무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유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새. 어린 날의 나무는 그 새의 떠남을 마음 아파하곤 했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어 그 새가 떠나가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자란 나무는 이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만남은 헤어짐을 기약한다. 그저 흘러가는 삶의 순서가 온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이, 운이 좋다면 재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무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많다. 나무는 이야기를 자주 하진 않지만, 자신의 몸에 삶의 역사를 새긴다. 여리디여린 새순이 자라 하나의 울창한 숲이 되고, 넓은 가지를 뻗은 한 나무가 되었다. 여전히 자신의 뿌리로부터 먼 곳을 꿈꾼다. 하늘 높이 닿아, 미지의 태양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하면서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굳세게 자란 나무의 가지는 여전히 나약하다. 오늘도 여지없이 바람에 흩날리고 꽃잎을 떨어뜨린다. 어떤 밤의 적막은 견디기 어렵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재잘거리는 새소리에 잠이 깰 것이다. 그리고 나무도 새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자신이 보아온 것에 대해. 자신이 겪어온 삶의 역설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