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현 Apr 27. 2020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겨울, 어느 폐차장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운전하는 차창 밖으로 천주교 성당 벽면에 걸러진 알록달록한 현수막 글귀를 보니 코웃음이 났다.      


‘하나님은 그럴지 몰라도 당신 얘기는 아니야.’     


그곳은 내가 이곳에 이사 온 뒤 신앙생활을 시작해보고자 혼자 발걸음했던 곳이다. 몇 주간 정신없던 이사 정리가 끝날 무렵, 연고가 없던 이곳에서 나름의 안식과 유대를 가져보고자 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중 그날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성당 내부는 넓었고, 어두웠으며, 휑했다. 교인은 보이지 않았고, 어떤 연유로 들어왔는지 모를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을 뿐이었다. 탐색자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한쪽에서 문이 열리고 사오십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분이 부산스러운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은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줄 용의가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여기 예배당은 어디인가요?”

“새신자세요?”

“네. 다녀보려고요.”

“어머나”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듯 놀랍다는 표정이었고, 나는 마치 오늘 기적처럼 당도한 천사처럼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혼자서 찾아온 새신자는 처음 봐요.”

“네….”     


그들은 친절함이 묻어나는 호의를 가지고 내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잘 오셨어. 대예배당은 이쪽이에요.”      


문 하나를 열고 거룩한 고요가 서려 있을 것 같은 계단을 한 두 층 오르니 널찍한 나무 대문이 대예배당을 지키고 있었다. 안에 들어서니 강단 앞쪽에만 불빛이 켜져 있었고 뒤쪽은 거의 어두웠다. 대여섯 명 정도가 모여 이번 주 주일에 쓸 성탄 예배 장식을 꾸미는 중이었다. 두 명의 중년 여성은 나를 그들에게 간단히 소개하고 수녀님을 불러주겠다고 했다. 몇몇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다가와 짧은 잡담을 나눴다. 매주 목요일 이곳에서 봉사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내게 앞으로 이 시간에 매주 나올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을 피하기 위해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밝게 웃었다.      


잠시 후, 뒤에서 수녀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나와 예배당 밖에서 이야기하시자고 했다. 그곳을 벗어나 밖으로 나온 우리는 마주 보고 섰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한때 교회를 다니던 개신교 신자이지만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라는 것. 모태신앙이라는 말도 했다. 이것은 지금은 내가 신앙적으로 휴직 상태이나, 꽤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의미하는 효율적인 단어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고해성사하러 가는 천주교 신자’라고 연애 때 자신을 소개한 바 있지만, 성당에 가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수녀는 나보다 남편의 상태가 심각하다며 웃었다. 이곳에 얼마 전 이사를 왔고 아이가 둘 있는데, 함께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낯선 사람에게 하는 꽤 긴 자기소개였다. 수녀는 짙고 깊은 빛의 눈동자를 가진 꽤 믿음직한 사람 같았다. 그녀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자신의 수첩에 적었고, 예배 시간을 안내했으며, 예비자 교리 수업은 내년 1월부터 시작되니 그때쯤 직접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연고 없던 황폐한 거리에서 때때로 안식할 거처를 마련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영상과 영하를 오가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머리부터 등까지 왠지 모를 온기가 돌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느낀 온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다시는 그 예배당으로 발걸음 하지 않았다.      


새로 온 동네는 겨울의 척박함을 고려하더라도 꽤 거칠고 틈이 없는 거리의 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어떤 곳을 가기로 했어도 주차할 곳이 없어 포기하거나 돌아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날은 아이 둘을 데리고 급하게 소아과를 가야 했다. 새로 입소한 어린이집에서 영유아건강검진 서류를 긴급히 제출하라고 했다. 인근 소아과에 전화를 싹 돌려 받아준다는 병원 한 곳을 찾았다. 그곳은 내가 갔던 성당 바로 옆 단독 소아과 건물이었다. 반대 방향 차선에 맞붙어있어 꽤 멀리 돌아 그곳에 도착했지만 경사가 꽤 가파른 오르막이라 주차를 할 자신이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뒤로 후진을 하는데 바로 옆 성당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들어가도 될까, 주저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설마 성당인데 잠깐 주차한다고 박대하기야 할까. 게다가 나는 이번 주부터 이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기로 한 ‘예비 새신자’가 아닌가. 어쩌면 '더 귀한 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때쯤, 나는 이미 핸들을 꺾어 성당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주차장 앞문 쪽에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창문 너머로 응시했다. 그들의 눈길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방황하던 주차를 마쳤고 아이들을 힘겹게 내려주고 있었다.    

 

“여기 신자세요?”     


배가 더부룩하고 평소에 술을 자주 마셔서 붉은빛이 감도는 코.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가 뒷짐을 지고 내게 물었다. 그는 내 쪽이 아닌 주차장 입구 정면으로 몸을 향하고 있었고 시선만 내게 고정하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 눈빛에는 네가 여기에 주차해도 될만한 사람인지 묻는 시험의 눈초리가 가득했다. 위아래로 찬찬히 뜯어보는 그 태연하고도 오만한 시선에 마음이 구겨졌다. 그에게 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짧게 “네”라고 대답했다. 완전히 진실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거짓도 아니었다. ‘예비 신자’도 ‘신자’ 아닌가, 하는 편리한 정당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만약 당신이 이곳의 정당한 신자라면, 추운 겨울 어린 아이 둘을 손에 이끌고 당도한 이 어린양에게 작은 친절을...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똑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여기 신자세요?”

“.... 네”     


“여기 신자라고?”

“네”     


짧은 한 글자 대답에 점점 감정이 실렸다.      


“에? 신자? 그런데 나를 몰라?”     


예상치 못한 문장으로 펀치를 맞았다.      


“누구신데요?”      


나는 이제 방어에서 공격 모드로 어조를 바꾸었다.      


그런데 내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 남자는 같이 서 있던 중년 남자 하나에게

“이 사람 신자라고 하니, 명단 조회 좀 해봐” 라고 말하며 뒤돌아섰다.      


애 둘을 손에 붙들고 나는 거의 분노에 가까운 수준으로 감정의 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누구신데요?”

“이 분이 누구신가요?”     


오만한 침묵이 계속되자 ‘신원 조회’ 명을 하달받은 중년 남자에게 내가 물었다.    

  

“이곳 주임신부님이십니다.”      


적대감은 거의 충격과 경악의 국면으로 급선회했다. 그 가당찮은 신분에 분노가 들끓었다.      


“아, 아~주 높으신 분인가 보네요?”     


나의 비아냥거림에 그 주임신부가 ‘챠’하고 혀를 찼다.      


속으로 너 같은 사람이 무슨 목회일을 하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당신이 신의 대리자로 나선 것을 신이 알면 참으로 슬퍼할 것이라고, 당신은 자격이 없다고 고함치고 싶었다.      


아이 둘이 여전히 그곳에 나와 함께 있었다.      


“여기 옆에 소아과 진료만 보고 금방 와서 차 뺄 거에요.”


주체하기 힘든 마음속 말들이 두더지게임처럼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날은 춥고,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계속할 게임은 아니라는 자각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삐져나오는 두더지들을 망치로 내리치다 그냥 망치를 버리고 그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아이들 손을 이끌고 바로 옆 건물인 소아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 대고 그 주임신부가 “어디 가는 거야?” 반말을 해댔다.      


“금방 온다고요.”     


멀리서 그 주임신부는 다시 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를 향한 경멸에 찬 눈빛만은 숨기기 힘들었다.  

    

소아과 안으로 들어와 밝은 형광등 빛을 가득 머금은 흰색 벽을 마주하자 끔찍한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었다. 데스크에서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간호사의 미소에 힘이 풀려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접수를 하고 알록달록한 병원 장식 물품들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료가 끝나고 다시 차를 빼러 갔다.      

다행히 그 고주망태처럼 생긴 주임신부는 없고, 명을 하달받았던 중년 남자가 주차장 입구를 빗자루로 쓸고 있었다. 그는 내게 신자시면 2층에 올라가, 신자용 스티커를 받아 차에 부착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분이 정말 주임신부세요? 여기서 거의 모든 예배를 관장하시나요? 그렇다면 저는 여기를 못 다닐 것 같아서요. 예비 신자로 등록한 상태인데,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차 문을 닫고, 그분을 뒤로 한 채 성당을 빠져나왔다.      


며칠 전 새로운 안식처가 되리라 작은 희망을 걸었던 곳이 덧없이 붕괴하였다. 그곳은 이제 피하고 싶은 무덤 같았다.      


이후로도 그 주임신부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아, 그 성당 사이트를 샅샅이 조사해 그 주임신부의 이름을 알아냈다. 심지어 무슨 기념식 날 정중앙 앉아 거나하게 붉어진 얼굴로 신자들과 술을 마시는 사진까지 찾아냈다. 그 주임신부 얼굴이 정확했다. 이미지 속에 갇혀있던 기억보다 더 끔찍했다. 그의 눈에는 그 어떤 밝은 영성의 빛도 찾을 수 없었다. 동네의 한 성당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영적 지도자로 부름 받을 터전은 없어야 한다고, 그는 그래서는 안 되는 자임을 공론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미 그곳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나 다름없는데. 어쩌면 구겨진 마음을 덮고 짧은 사정 몇마디 하지 못한 내 어리석음 탓일지 모른다. 황폐한 겨울 추위로 마음이 더 강팍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이내 ‘의미 없음’에 방점을 찍고 성당 사이트를 닫았다. 거대한 철옹성을 군림하는 그의 이미지가 어른거렸지만, 그 상념도 의식 속 어느 외딴 폐차장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 성당에 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곳의 예비 신자가 아니다.



 



#하나님 #종교 #성당 #교회 #신자 #주차

작가의 이전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박상영, 젊은작가상 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