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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Jun 24. 2020

밀레니얼 세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딴청'


요즘 부장님, 팀장님, 사장님들의 하소연.


“요즘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당최 감이 안잡혀.”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확실히 80년대생인 우리 세대와도 다르다. 갭이 크다.


우리 세대는 (지극히 개인적 의견으로) 대략 앞 세대(기존 주류)와 얼추 보조를 맞출 수 있었다. 그들이 터놓은 길을 따라가고자 노력했고, 끝도 없는 잔업을 하면서 주류의 개념에 함께 머물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 Z세대 시대는 우리와 다르다.

이제 그들이 산업현장에 ‘차기 주류’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내가 보기에, 앞 세대는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제 막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Z세대)는 이미 앞 세대를 뼛속들이 간파하고 있다!!

     

그들이 앞 세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기존 주류 세대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딴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당신과 다르다’는 시그널을 완곡하게 ‘네~??’ 라는 대답으로 (‘네’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교묘한 이중의 언어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의 기성세대를 완전히 이해하고 다른 길을 간다.

하지만, 기성 세대는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간극. 이 현상의 이유는 무엇일까.      


c. 지이현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 기업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임원급, 부장님, 차장님, 사장님 분들은 집에서 어린 자식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젊은 세대와 대체로 시간을 공유하지 못했다. 요즘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요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본 경험이 적다. 어린 세대가 자라나는 과정을 대체로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다.


대신 어린 세대들에게 (어린 세대가 눈에 보이는 때마다) 자신의 가치를 주입하고, 강조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후세대보다 당면한 세대 또는 앞 세대의 교육을 전수받기에 바빴고, 그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반면, 어린 세대들은 기성 세대가 어떤 가치 속에서 그렇게 사는지 지켜보면서 컸다.

'그들의 부재가 이뤄놓은 것의 결말'을 지켜보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 결말을 지켜보았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그 결말은,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 세대가 주류로 포진한 일터에 진입해야 하기 때문에, '차선이면서 최선의 처세법'들을 개발해냈다. '의도적으로 말을 못 알아듣는 척'하는 것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도 한다. 확실한 필요가 있거나 확실한 성공이 담보된 상황에서만.      


그들은 기존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에 '가중치'를 매긴다.      


개인의 시간에 대한 존중, 워라밸 (work-life-balance), 생태주의(환경과 조화로움을 추구), 자아존중감, 개인적 가치와 연관된 소비, 소수라도 가치 있는 것에 연대한다는 의식 등      


밀레니얼 세대가 정시퇴근 후 가지는 자신만의 시간 속에는 그러한 가치가 깃들어있다. 그 가치에 나는 손을 들어주고 싶다. 더 응원해주고 싶다.      


왜냐, 그렇게 해도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 국민이 행복해지는 길이 ‘나라가 사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세상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그 세상에 살고 있는 내 남편을 하루라도 빨리 구출해내고 싶다.      


코로나19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먼저 탈출했고, ‘일하기 위해 사는 세상’에서 구조되었다. 덜 소비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피난처에 머물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그 세계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정시 퇴근’ 하는 밀레니얼 세대, Z세대, 90년대생들에게 “그렇게 일찍 퇴근해서 어디 가서 무얼하냐”고 묻지 말라. 그들은 그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세상을 만드는 중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나눠야 할 일의 몫을 그들이 내팽개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들이 공동체도 모르고 이기적이라고 야속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을 계몽할 것이 아니라, 일의 판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계몽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혼마저 찌들게 할 것 같은 폐를 들고, 다시 숨 쉴 수 있게 하는 자신만의 숲으로 간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우리 모두 그들이 심은 나무의 숨을 들이마시며 감사해하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서, 다른 선택지가 있는지 몰라서 갈 수 없었던 그 길을 그들이 개척하고 있다.


그들의 딴청으로,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터전은 더 넓어질 것이다. 한없이 좁아지고 있는 세계에서.


세상은 그들에게 좁아터진 원룸과 ‘인턴’을 위한 ‘인턴’ 같은 자리만을 쥐여주었지만, 그들은 그 골방에서 자신만의 꿈을, 소망을 조용히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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