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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Feb 22. 2020

결핍의 비밀

2020년 1월 2주 차, 글쓰기 모임, 두 번째 수업 과제 

“결핍은 결점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는 불완전한 그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풍요롭다고 여기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결핍에 대한 해석은 낭만적이다. 감독의 작품에 묻어있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세상의 기준에서 어딘가 조금 모자란 인생사들을 완전한 무언가로 보이게끔 한다. 적어도 한 인간의 온전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원동력으로 결핍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잔잔한 슬픔과 함께,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핍을 바라보는 제3의 시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한발 물러서서 삶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절대자의 시선에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절박한 결핍을 느끼는 어느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풍요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히로카즈의 말에 딴지를 걸어본다. 당신의 말은 어쩌면, 세상 편한 소리 같이 들리기도 한다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 그의 영화 속에서는 언제나 '가족'이 주요 모티프가 된다. 한 인간이 스스로는 메꿀 수 없는 결핍을 '가족'은 부여하기도, 해소하기도 한다.


2.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결핍이 없는 사람이라면, 바로 그러한 이유로 결핍을 느낄 것이다.      


결핍의 뜻을 찾아본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그리고 ‘다 써 없어짐’. 

살면서 사소한 결핍은 시시때때로 느끼겠으나, 지금 내가 가진 결핍의 큰 주제는 ‘나 자신’인 것 같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경단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둘째가 돌이 되고 나서부터는 늘 초조해했던 것 같다. 사회 속의 내 자리가 영원히 없어질 것 같아서.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벅찬 시간이었지만, 나 자신이 없어질 것만 같은 결핍감도 그만큼 컸다.      


나는 서둘러 일할 준비를 했고, 사회에 다시 나갔다. 하지만 그 일은 사실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잘못된 길로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 일은 오래가지 못했고, 내 인생에서 실패한 한 해로 기억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우연히 결혼 이전의 회사에서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의뢰가 들어왔고, 좋아하던 일을 다시 맡게 되었다. 그 일을 다시 일 년간 해보면서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와 병행하느라, 결혼 이전처럼 많은 양의 업무를 진행할 수는 없지만 적은 양이라도 온전히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에 결핍감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리고 최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도 더 많은 결핍감이 해소되고 있음을 느낀다. 나 자신이 아닌 것에 조금 덜 신경 쓰게 되고,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워본다. 그리고 소중한 것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바라보게 된다. 세월 따라,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 말자고 한 번 더 다짐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지도 모른다. 결핍은 또 다른 가능성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시작점이다.           




#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은?      

나 자신이 아닌 것에 신경 쓰고,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시간을 들이는 것.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 세월 따라 사는 것. 지나치게 자학하거나 자책하면서 자존감을 스스로 갉아먹는 태도. 맞다. 그런 태도가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결국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도, 성장의 디딤돌을 쌓아가는 힘도 모두 내게 있다.      


#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모르겠다. 성격이나 기질의 문제인가? 나약해지는 것은 쉬운 일 같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을 때 몸을 움츠러드는 것처럼. 그런 위험과 두려움을 감지함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당당히 피고, 나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일에는 힘이 들어간다. 

이를테면 쓰지 않았던 근육을 풀기 위해 요가를 할 때, 너무 아프다. 그래도 새로운 동작들과 스트레칭을 따라 하다 보면, 한결 몸이 부드러워지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얼마나 내 몸이 굳어있는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쓰지 않으면 굳는다. 늙어간다. 움츠러들고 숨게 된다. 시간만이 흘러가고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서 이제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고, 내가 가진 성격과 성품 안에서 조금 더 고민해보고 싶다. 내가 바라는 나와 편안한 삶의 자세에 대해서. 신이 나를 만들었을 때, 흡족했을 그 마음으로. 나를 믿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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