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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현 Feb 24. 2020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 속에서 발견한 <데미안>

2020년 1월 3주 차 글쓰기 모임 과제 - 데미안(1)

    

“내 주위에서 세계는 낡은 물건들의 떨이판매처럼 서 있었다. 맥없고 매력 없이. 책들은 종이였고, 음악은 서걱임이었다.”

“오, 삶의 맛은 얼마나 김빠졌던지!”

(헤르만 헤세, 「데미안」, 민음사, 91p & 94p)


스테디셀러 책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TV 독서 프로그램인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최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재조명했다. 고전의 힘이랄까. 미디어에서 아주 조금 숨을 불어넣었을 뿐인데, 이 책은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당당히 올려놓았다. 고전은 이렇게 세월을 지나, 몇 번이고 역주행을 하며 다시 ‘최신의 유행하는 것’이 된다. 유행의 바람은 내 곁에도 스쳐갔다. 나의 글쓰기 모임에서 금주의 책으로 찾아온 것.   

   

사실 처음 「데미안」이 이번 주 글쓰기 모임의 책으로 선정되었을 때, 설렘과 실망이 교차했다. 요즘 트렌드에 오랜만에 편승할 것이라는 설렘과 동시에, 한편으론 나 자신이 이미 오래전 지나온 세계의 이야기처럼 아득했기 때문이다. 특히 총 8개의 목차에서 첫 번째 목차인 <두 세계>를 읽을 때는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았다. 너무도 오랜 유년의 때에 귀가 익도록 들었던 구전동화 같기도 했고, 삶의 순수함을 잃고 다른 세계에 있는듯한 내게는 너무 멀어져 버린 고민거리 같았다.

      

그러나 극 중 주인공이자 화자인 ‘싱클레어’가 유년의 경계를 지나, 점점 방황하면서 소설은 무척 흥미로워졌다.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한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두 세계 어디에도 명확히 속하지 않은 ‘자신만의 세계’로 넘어가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성장의 생채기와 그 상처를 소리 없이 견디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유년에 꿈꾸던 모습과는 슬프게도, 잘 포개어지지 않는 내 현재의 모습도 빗대어 보게 된다.   

  

정돈되고 따스한 모성의 세계에서 취기와 마비의 감각으로 세상을 냉소하는 싱클레어. 그런 그에게서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다 그렇게 사는데 난들 어쩌겠어’라며 세상사에 적절히 때 묻어가는 나도 발견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의 하루가 얼마나 충만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급변하는 아파트 시세와 당면한 처세에 대한 이야기들에 좀 더 골몰하면서. 내가 사랑하던 문학작품에 시간을 들이진 못하면서, 온갖 자기 계발서나 심리치료 서적을 통해 어떻게든 세상에 발붙이고 따라가려는 내 모습에서. 내 시간은 속세를 따라, 세월 따라, 적당히 변변한 모양새를 갖추는 듯 시늉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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