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우는 그렇다. 소설을 쓰는 동안 세 가지 두려움에 시달린다. 초고를 시작하기 직전엔, 두려움을 넘어 막막하기까지 하다. 알래스카 설원에 꽃삽 하나 들고, 그걸로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기분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의심스럽다.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초고를 끝내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면, 정말로 의심스럽다. 과연 이걸 끝낼 수 있을까? 탈고를 하고 나면, 세상에 나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렵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글쓰기도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두려움과 의심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지 못하면 펜을 놔야 한다.” (책 본문 중에서)
정유정은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기까지, 한 3년간 세상과의 인연을 모두 끊고 동굴에서 글만 쓰며 지냈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안 되면 혀 깨물고 죽는 거다’하는 심정으로. 지금은 최고의 소설가에 이름을 올렸지만, 알고 보면 공모전을 열한 번 탈락해 11전 12기를 했던 그녀다.
게다가 처음부터 일필휘지로 소설가로 등단한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총 14년 정도 한 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직으로 9년.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하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는 직장인이자, 세 동생의 엄마, 한 집안의 가장으로 이십 대를 보냈다고 고백한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산 뒤 비로소 습작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그녀 나이 만 서른다섯이었다. 등단까지는 6년이 걸려 마흔이 넘은 나이었다.
때때로 나는 작가들의 연보를 보며, 첫 등단작이 그의 나이 몇 살에 나온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버릇이 있다. 일찌감치 10대에서 20대에 등단작을 내놓은 경우를 보면, 감탄과 함께 나지막이 한숨이 나온다. ‘이분은 참 일찍도 업을 이루었구나’하는 부러움과 함께 아직도 글 주변에서 미적대며 서성이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유정 작가와 같이, 다른 생업에 종사하다가 상대적으로 느지막이 등단한 경우를 보면 ‘끝끝내 당신은 업을 이루었구나’하는 마음으로 존경 어린 마음이 든다. 생이 짧은 줄 모르고, 꿈을 유보하는 게으른 변명을 당신은 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그리고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는 그 한 줄에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미약한 시작이라도 좀 해보라고 본격적으로 나 자신을 채근해본다. 내 등을 떠밀어 그 길에 서게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을 내가 지속하고 싶다는 것이다. 생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밥벌이를 위한 타자기의 길도 있고,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한 숙명적인 글도 있을 것이다. 한 세계 안에서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번민하는 전 과정을 완성해내고 싶은 욕구도 있다. 읊조리며 순간의 사색을 담은 시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계속해보고 싶다. 마음껏 실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