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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Feb 18. 2019

‘라이프 프로젝트’가 있나요?

실무를 시작하고 맡은 두 번째 프로젝트는 파주 출판단지의 '안그라픽스 사옥'이었다. 안그라픽스는 '안상수체'로 유명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이 설립한 디자인 전문 출판사였다. 출판사 사옥과 선생님의 스튜디오를 겸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안 선생님을 가까이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늘 진지하고 어렵게 말하는 건축가와는 달리 디자이너는 이토록 가볍고 경쾌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원 아이 프로젝트'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아주 오랫동안 진행해 오고 계셨는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쪽 눈을 가리게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이름과 직업 정도의 아주 간단한 정보와 함께 다양한 배경과 포즈로 찍은 사진들이 수백, 수천 장이 쌓여 압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얼마나 이 프로젝트를 즐겁게 받아들이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참으로 근사한 프로젝트구나 생각했다.


한편 대학 졸업반 때 참가했던 국제 워크숍의 튜터였던 호주 RMIT 대학의 Sand Hesel 교수님은 '오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다. 직업의 특성상 전 세계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오렌지 무더기들을 찍고 기록하는 것이다. 다양한 환경에 놓인 동일한 오브제가 서로 다른 도시와 삶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을 읽어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오늘 출근길에 트위터를 보다 @hawaii_delievery라는 계정을 알게 되었다. 20년 뒤 바닷가에 오픈할 칵테일 바의 음악을 하루에 한 곡씩 리스트업 하는 계정이었다. 계정의 운영자는 김하나 님과 황선우 님으로, 각각 비혼 독립 가구로 살다 조립식 분자가족으로 동거하게 된 이야기를 최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20년 뒤에 바닷가에 오픈할 바의 음악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근사한가.


내게도 몇 개의 '라이프 프로젝트'가 있다. 교토, 부에노스 아이레스, 뉴욕, 페루지아 네 개의 도시에서 각각 일 년씩을 살아보는 '네 도시, 사계절' 프로젝트가 그 하나이고, 40대에 뉴욕에서 사진을 정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페루지아에서 일 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한 달을 살아보았으니, 첫 번째 '라이프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꿈꾸는 삶이란 얼마나 생기 넘치는 삶인가. 신기루를 쫒는 것이 아닌 두 발을 현실에 단단히 딛고, 하늘의 별을 쫒는 삶은 기어이 우리를 먼 우주로 쏘아 올린다.



2019.02.1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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