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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Dec 29. 2018

그 많은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나는 여성이고, 건축가이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남성인 환경에서 일해왔지만, 사실 스스로 여성임을 크게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다. 여성 취급 또는 대우를 받는 상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던 듯하다. 


내가 여성 건축가로서 스스로를 인식했던 것은 재미있게도, 강단에서였다. 5학년(많은 분들이 모르시겠지만, 현재 건축학은 5년제로 운영이 된다.) 설계 스튜디오를 가르칠 때, 아이들은 실무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자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이 처음이라며 낯설어했다. 그만큼 적은 숫자라는 이야기다. 굳이 남성, 여성의 차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차이이지 않을까 하지만, 기존에 배웠던 남자 선생님들과는 다른 몇 가지의 좋은 점을 얘기해주기도 하고, 꽤 심정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스스로 괜찮은 모델이 되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 중 하나가 건넨 손편지를 읽고서이다. 아이가 쓴 편지엔 문정희 선생님의 시 '그 많은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를 들며, 선생님은 아직 그 꿈을 지켜가고 있는 것 같아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은 실무 현장에 있는 내게서 막막한 미래에 대한 작은 가능성을 보았던 듯하다. 


며칠 전, 실무 삼 년 차에 들어가는 제자 중 하나가 크리스마스라며 선물을 보내왔다. 이제 후배를 받는다며,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내비치는 아이에게 대단치 않은 조언을 건네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재겨 다진다. 


그 많은 여학생들이 실무 현장에서, 학교에서 그들의 꿈과 능력을 펼쳐가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을 기꺼이 환대해주길 기대한다. 우리는 여성과 남성이기 이전에 그저 '사람'이기에, 그리고 이 세상의 반을 함께 지탱하며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2018.12.29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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